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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출판계 최대 이슈 '도서정가제 논란'

중앙일보

입력

올해 출판계의 최대 이슈는 일부 출판사들의 자사책 사재기 파동과 도서정가제 붕괴에 따른 온.오프라인 서점들간의 책값 할인공방, 그리고 불법복사와 표절에 따른 대학교재 전문 출판사들의 저술 및 출판 중단 선언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지난달 여야 의원들이 국회에 상정함으로써 연말연시 출판계를 다시 한번 들끓게 하고 있는 도서정가제 문제는 일반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 훑어 보기= 도서정가제 논란, 어디까지 왔나

올해 나온 책 중 최대 베스트셀러인 『더블루데이북-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있다』를 비교해보자. 정가, 즉 교보나 영풍 등 대형서점의 판매가격은 6천8백원이다. 하지만 이 서점들 인터넷사이트에만 들어가도 10% 싼 6천1백20원, 최대 인터넷서점인 YES24에선 30% 할인된 4천7백60원에 살 수 있다.

이런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인터넷서점들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중소형서점들이 크게 반발한 것은 당연지사. 출판사들은 현금거래를 해주는 대신 더 싸게 공급하라는 인터넷서점측의 요구, 온라인서점에는 아예 책을 공급하지 말라는 오프라인서점들의 압력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계속해왔다.

마침내 출판사들과 인터넷서점업계는 3월말 인터넷서점의 10% 책값 할인에 5% 이내의 마일리지 적립을 허용하되 우송료는 소비자가 부담하게 한다는 절충안에 합의했다. 그러나 곧 인터넷서점 북파크가 주요 신간 및 베스트셀러를 40%까지 할인판매하기 시작하고 다른 인터넷서점들도 슬그머니 각종 이벤트성 할인판매를 실시, 합의는 의미없는 종이장이 돼버렸다.

그러던 중 11월15일 민주당의 심재권 의원 등 여야 의원 32명이 '발행된 지 1년 이내의 신간은 10%까지만 할인을 허용하며, 이를 어길 경우 최고 3백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출판 및 인쇄진흥법안'을 공동발의했다. 이에 오프라인 서점들은 적극 찬성한 반면, 인터넷서점들은 연말까지 3백종 책에 30% 이상의 할인판매를 결의하며 항의했다. 지난달 30일 문화관광위원회가 공청회를 열었지만 별 성과는 없었다. 게다가 일부 의원들은 이 안에 적극 반대하고 있어 이번 16대 정기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 거꾸로 보기 1= "인터넷서점들의 경쟁적 할인은 유통질서를 뒤흔들고 양서출판을 저해하는 근시안적 시장논리다"

양측의 대표적인 반박 논리에도 허점이 있다. 유통질서를 흔들고 중소서점들의 몰락을 가져온 근본책임이 인터넷서점에 있는 걸까. 아직도 4~5개월짜리 어음이 흔하게 나돌 만큼 전근대적인 분야가 출판유통이다. 때문에 인터넷서점들의 정확한 현금결제는 출판사들을 유혹하는, 또 유통질서의 현대화를 위해 바람직한 시작이었다.

또한 많은 오프라인서점들이 베스트셀러와 중고생 학습서 판매에 의존하며 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실패해온데 비해 온라인서점들은 네티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많은 전략을 시도했다. 그 결과 독서인구가 감소하고 있다는 우려 속에서 독서시장 '파이의 크기'를 키우는데 적지않은 역할을 했다. 또 일부 사이트들은 전문 서평자까지 이용하면서 양질의 책정보를 제공, 네티즌 독자들의 책에 대한 안목을 키워주고 있다.

◇ 거꾸로 보기 2= "정가제 주장은 책을 싸게 살 수 있는 소비자들의 권리를 외면한 집단적 이기주의의 발로다"

과연 그럴까. 도서정가제가 무너진 이후로 책값이 물가상승률 등에 비해 급격히 인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많이 팔리지 않을 바에는 제값이나 받자"는 생각에서 나온 가격 현실화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품이 많이 든 인문서 등이 아니라 소설책같이 일반인들이 많이 찾는 책들의 값도 많이 오른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출판저널'과 '한국중대형서점협의회' 등에 따르면 7천원대였던 소설책이 8천원대로 올랐고 9천원선도 나오고 있다. 인터넷서점들이 출판사에 공급가를 낮춰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출판사가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정가를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들리는 이유다. 이 때문에 독자들은 최소한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할인가로 책을 사려 할 것이며 이는 더 큰 할인율경쟁으로 악순환되면서 출판계와 독자간의 불신을 키울 수도 있다.

◇ 멀리 보기= 전망과 과제

우선 현재 입법안 자체에 문제가 적지 않다. 할인율 제한 대상을 '발행한 지 1년 이내 도서'라고 정한 것은 네티즌의 특성상 신간 서적을 찾는 사람들의 비율이 60% 안팎인 인터넷서점에게는 매우 불리하다. 우송료 별도 부담 요인을 고려하지 않은 점도 인터넷서점들의 반발이 이해되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출혈판매까지 감수하며 시장을 장악하려는 인터넷서점들의 무분별한 할인을 묵인하는 것도 문제다. 정작 등터지는 것은 소비자들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감정적으로 '밥그릇 싸움'을 벌여선 안된다. 이번 논쟁과정에서 보면 도서판매량이나 유통가격, 수익률 등에 대한 정확한 근거자료없이 서로를 공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구멍가게식 유통질서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도서정가제문제는 유통의 현대화에서부터 풀어가는 것이, 멀어보이지만 결국 가깝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라는 출판계 일각의 지적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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