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에 뿌리 내리는 사상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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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양 한의원 김인태 원장(가운데)과 오지은 테라피스트(오른쪽)가 사상의학을 접목한 스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김수정 기자]

지난 8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에 위치한 네모양 한의원. 최미영(가명·32·인천시)씨가 한의원에 설치된 욕조에 들어갔다. 최씨는 서비스업 종사자다.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생긴 수면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한 달 전 이곳을 찾았다.

 네모양 한의원 김인태 원장이 한약재인 천궁과 진피를 다린 물을 욕조에 부었다. 최씨는 육계차(한방차)를 마시며 30분간 스파를 즐겼다. 김 원장은 “천궁·진피·육계는 최씨처럼 몸이 차고 소화 기능이 약한 소음인의 신진대사에 좋다”며 “목욕요법은 오래전부터 한의학의 중요한 치료법 중 하나다. 출산 전후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체질과 건강 문제에 따라 스파에 사용하는 한약재가 달라진다. 김 원장은 수면장애 개선을 위해 스파를 마친 최씨의 두피·목·어깨에 침을 놨다. 이후 오지은 테라피스트가 피아노 선율에 맞춰 최씨를 마사지했다. 오 원장은 “한방 진료에 강약을 조절한 마사지를 병행하면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건강 다스리는 맞춤·예방 의학

사상의학(四象醫學)의 적용 분야가 넓어지고 있다. 스파부터 건강검진, 비만·당뇨병 등 만성병 관리, 심지어 자동차 옵션 선택에도 적용해 차 안에서도 건강을 챙길 수 있다.

 사상체질의학회 김종원(동의대 한의대 교수) 회장은 “사상의학은 얼굴생김새·체형·목소리·피부·성격을 분석해 사람의 체질을 태양·태음·소양·소음 네 가지(사상체질)로 나누는 의학이론”이라고 설명했다.

 경희대 한방병원 사상체질의학과 고병희 교수는 “많은 분야에서 개인의 체형과 취향에 맞는 맞춤 제품이 유행이다. 사상의학은 체질별로 건강관리·질병예방·치료효과를 높이는 맞춤·예방의학”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인구의 50%가 태음인으로 보고된다. 이어 소양인(30%), 소음인(20%) 순이다. 태양인은 0.1%로 거의 없다. 이렇게 정해진 체질은 바뀌지 않는다.

건강 검진부터 만성병 관리까지

같은 음식과 약을 먹어도 나타나는 반응은 개인별로 차이가 있다. 한의학에선 이 같은 이유가 사상체질에 있다고 본다. 체질별 건강관리법이 다른 이유다.

 경희대 한방병원, 대전대 천안한방병원 등은 10여 년 전부터 건강검진에 사상체질을 포함시켰다. 삼성 계열사와 현대자동차 임직원 약 7000명이 이 서비스를 이용한다. 특히 체질별 뇌졸중(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는 질환) 예방을 특화시켰다. 천안한방병원 안택원 병원장은 “음식을 많이 섭취하고 에너지를 축적해 비만·당뇨병·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에 잘 걸리는 태음인은 뇌졸중 위험군”이라며 “예방을 위해 운동처방과 함께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노폐물을 배출하는 데 좋은 오미자·갈근·연근으로 만든 한약을 처방한다”고 말했다.

 10년 전부터 천안한방병원에서 사상체질 건강검진을 받고 있는 삼성SDI 인사팀 홍봉택(50) 차장. 태음인인 그는 다행히 뇌졸중 위험은 없었다. 하지만 잦은 술자리 때문에 지방간으로 진단받았다. 홍 차장은 “매주 산에 오르고 태음인의 간 기능을 돕는 나복자(무씨)로 만든 한약을 복용해 지방간에서 벗어났다”고 말했다.

만성병의 단초를 제공하는 비만과 국민 질환인 당뇨병도 사상의학으로 예방할 수 있다.

 경희대 한방병원 사상체질과 이준희 교수는 “체질별로 비만의 원인·비율·유형에 차이가 있다. 이것을 분석해 선·후천적 원인을 개선한다”고 말했다. 경희대 한방병원이 약 3000명을 조사한 결과 체질별 비만 환자 비율은 태음인이 약 50%로 가장 많았다. 이어 소양인(18%), 소음인(5%) 순이었다. 태음인은 주로 복부, 소양인은 상체, 소음인은 엉덩이 부위가 비만했다. 한국한의학연구원과 아주대병원은 공동으로 체질별 당뇨병 발생률을 조사했다. 1254명을 분석한 결과 소음인은 7%, 소양인은 9%였다. 반면 태음인은 13%로 소음인의 두 배였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의료연구본부 김종열(한의사) 책임연구원은 “태음인은 인슐린 저항성이 높기 때문에 체중과 상관없이 당뇨병 환자가 많다”고 설명했다.

사상체질 진단 표준화로 활성화

사상의학은 체질진단이 표준화되면서 더 활성화됐다. 한의학연구원 김종열 연구원팀이 2010년 사상체질 진단기를 개발했다.

 고병희 교수는 “한의사가 직접 보고·듣고·질문하는 기존 체질진단 결과는 한의사마다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피검자의 정보를 컴퓨터로 분석하면 정확하고 객관성 있게 진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상체질 진단기는 전국 30여 곳의 한방 병·의원에 보급됐다.

 김종열 연구원은 “사상의학이 표준화되면 다양한 실생활에 응용할 수 있고 관련 제품 생산에도 반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예를 들어 자동차 구매 시 옵션을 선택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몸에 열이 많은 소양인 가족은 자동차 구매 시 열선시트 대신 에어컨 기능이 강화된 제품이 적합하다. 소음인 가족은 반대다. 폐기능이 약한 태음인은 환기 시스템이 좋은 자동차가 추천된다. 김 연구원은 “사상의학은 임신 전부터 노년기까지 체질별 생애건강관리 시스템으로 확대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글=황운하 기자
사진=김수정 기자

사상의학(四象醫學)=조선 후기 의학자인 이제마(李濟馬)가 1894년 창안했다. 사상의학은 체질을 태양(太陽)·태음(太陰)·소양(少陽)·소음(少陰) 네 가지로 나눠 건강을 관리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의학이론이다. 사상체질은 만3~4세는 돼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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