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설이 타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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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해마다 오는 각설이가 뇌는 타령에 갖가지가 있지만, 그 하나 하나는 판에 박은 듯이 같으니 살맛이 안 난다. 대사와 가락이 어쩌면. 그렇게 똑같을 수 있는가.『변하면 변할수록, 더욱 같아진다』는 「프랑스」의 속담이 생각난다. 인간의 지식은 무제한으로 진보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정말 19세기적 착각이었나 보다.
각설이 행렬의 선진은 초여름에 도래하는 가물. 곧 이어 각설이 2진인 장마가 일고, 한해 대책은 삽시간에 수해 대책으로 비뀐다. 해마다 찾아 오는 손님이니, 미리 미리 접객 준비를 서두를 법도 한데, 손이 사랑방을 거쳐 대청 마루에 올라선 연후에야 법석을 떨기 시작하는 등이 한심스럽다. 그러나 더욱 기막히는 것은 각설이 3진인 뇌염을 맞아들이는 끝. 목숨을 잃은 희생자 수효가 상당수에 이르기까지 유사 뇌염이다, 진성 뇌염이다 하고는 하품만 하다간, 돼지울을 멀리하고 모기를 조심하라는 교시를 내리고 시치미를 뗀다.
각설이 4진인 태풍의 피해는 다행히 대단치 않다. 이번에도 한반도에 기어오르면 「위니」아가씨의 치맛바람은 사모님 족들의 그것에 눌러 별반 맥을 추지 못할 것이 뻔하다. 각설이의 압권은 쌀값 파동이라는 제5진. 쌀값이라는 각설이 타령은 해를 쫓아 신비함을 더해가고 있다. 농자 천하지 대본이라는 표어가 아직도 살아 있다. 쌀 값이 오르 내리는 것이 전 국민의 경제 생활을 직접적으로 좌우한다는 대 원칙도 있다.
건국 이래 곡가 안정을 위해서 동원 되어 온 이름난 인재들의 수효와 외원의 량이 거의 천문학적 숫자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런데도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오를리 없다는 쌀 값이 오른다. 그제서야 보유미가 무제한 방출되고 업자에게 철퇴가 내린다. 곡가 안정 5개년 계획이 나온대도 이젠 안심이 안된다. 어려운 얘기는 문외한이 알 바 아니다. 다만 무제한 방출한다는 보유미는 정말 무제한으로 쌓였는가. 일본에다 쌀을 수출한다는 건 또 어떻게된 영문인가. 작년에 왔고, 올에 또 와있는 각설이가 내년이라고 안 올리 없다. 내년 일은 내년에가서 볼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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