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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재무성 신임 재무관 미조구치 젠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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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일본 재무성의 재무관이 바뀌면 엔화가치가 오른다'.

3년반의 '장수' 끝에 물러난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전 재무관에 이어 지난 15일 취임한 미조구치 젠베(溝口善兵衛.57.사진) 신임 재무관을 두고 나온 말이다.

1999년 7월 구로다가 재무관에 취임했을 때도 엔화가치는 첫 3개월간 달러당 15엔이나 상승(엔고)했다. 구로다가 전임자인 '미스터 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原英資)와는 달리 국제금융시장에서 카리스마가 약해 저돌적인 시장개입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시장의 관측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엔화가치는 미조구치가 신임 재무관에 내정된 지난해 12월 하순부터 달러당 1백20엔선을 깨고 오르기 시작해 지난 주말 1백17.95엔을 기록했다. 엔화가치는 지난해 10월 중순엔 달러당 1백25.30엔까지 떨어진 뒤 인사발표 전까지 1백20엔선에서 오락가락했다. 이 때문에 재무관 교체 직후엔 엔고가 된다는 징크스가 나온 것이다.

앞으로 관심사는 미조구치가 국제금융시장에서 얼마나 리더십을 발휘하느냐에 모아진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그는 취임회견에서 "환율을 말로 유도하지는 않겠다"며 "필요하면 시장개입을 행동으로 보여주겠다"고 강조했다. 급격한 엔고는 방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취임 초 엔고 바람을 맞았던 구로다는 정교한 금융이론을 구사하며 서서히 주도권을 잡는 데 성공했다. 이 때문에 역대 최장수 재무관이 되기도 했다.

재무성의 재무관은 사무차관과 같은 급으로 직업관료조직의 톱이다. 사무차관이 국내업무를 맡는 데 비해 재무관은 국제업무 담당이다. 미국 등 G7과 함께 외환시장 개입은 물론 금융위기 진화 등 국제금융시장을 주무른다. 일본에서는 시장개입의 실질적인 최고 책임자다. 따라서 재무관의 일거수 일투족은 국제적인 뉴스가 된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대규모 시장개입을 지휘했던 사카키바라는 '완력파', 차분한 논리로 엔화가치를 안정시킨 구로다는 '이론파'로 불린다. 미조구치의 국제적인 인지도는 전임자들에 비해 상당히 처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엔화가치가 급등할 경우 일본이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겠느냐는 걱정도 나온다. 특히 일본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엔저 카드를 사용키로 한 상태이므로 미조구치에 쏠리는 기대와 부담도 적잖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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