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헌재 소장 자리가 3억원짜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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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자진사퇴를 거부하고 나섰다. 국가를 대표하는 재판 기관인 헌재의 기능 마비 사태가 장기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번 꼬인 인사가 실타래처럼 엉키는 양상이다.

 이 후보자는 그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국회 표결도 있기 전에 사퇴할 경우 (인사청문회에서) 제기된 의혹을 인정하는 것이란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개인통장에 넣어두고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특정업무경비에 대해선 “잘못된 관행”이라면서도 “내가 통장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바람에 기획재정부가 최근 특정업무경비 지침을 개선하는 계기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재임기간 6년간 받았던 전액(약 3억원)을 사회에 환원할 용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명예회복을 위해 자신의 거취는 국회 표결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러한 이 후보자의 입장 표명은 온당치 않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물론 그의 설명처럼 청문회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의혹이 양산되면서 ‘괴물 이동흡’이 만들어졌을 수 있다. 가족이 받은 마음의 상처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청문회에서 정확한 해명으로 불거진 의혹들을 불식시키는 것은 공직 후보자의 당연한 도리다. “무죄추정이 아니라 유죄단정이었다”거나 “관행의 문제를 한 개인이 다 책임지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말에선 반성 없는 아집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더욱이 자신으로 인해 특정업무경비 지침이 개선됐다는 식의 주장은 의혹의 당사자가 입 밖에 꺼낼 말이 아니다. 3억원을 사회에 환원할 용의가 있다는 것 역시 헌재 소장 자리의 값어치가 마치 그 정도인 듯한 오해를 부를 수 있다.

 다음달 22일이면 소장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송두환 헌법재판관이 임기 만료로 퇴임한다. 소장이 빠진 재판관 7명으로는 평의(評議)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후보자는 사퇴 거부가 헌법과 법치주의를 위해 올바른 길인지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인도 헌재를 정상화하는 차원에서 결단을 내리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