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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담지 못한 상상력, 소설 쓰며 확 풀어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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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루시드 폴

의외는 아니었다. 싱어송라이터 루시드 폴(본명 조윤석·38)이 소설집 『무국적 요리』(나무나무)를 내놓은 건. 시적 감성이 풍부한 노래 가사나, 시인 마종기와 교류한 편지를 모은 『아주 사적인, 긴 만남』(웅진지식하우스·2009)에서 그 가능성은 엿보였다.

 그렇지만 의외였다. 그의 다른 면모가 비쳐서다. 소설에는 경쾌한 유머가 가로지르고 있다. 노래나 편지에서 뚝뚝 찍혀 있던 외로움에서 벗어난 듯했다.

 “내 음악이 틀에 갇히는 듯해 고민이 많았죠. 노래 텍스트에 의미를 넣는다는 것에 회의도 들었고요. 멜로디의 강박감이 없는 운율을 만들고도 싶었고. 그런데 소설을 쓰며 뭔가 확 뚫린 듯했어요.”

 그는 음악으로 담지 못했던 상상력의 한계가 이 소설 쓰기로 풀렸다고 했다. 그랬겠다 싶었다. ‘무국적 요리’라는 이름처럼 그의 상차림은 한마디로 잘라 말할 수 없다. 일반 소설에 근접한 작품(‘탕’)부터 동화(‘애기’)나 우화(‘똥’), 과학소설(SF)이나 장르물(‘추구’) 같은 느낌이 있는 작품까지 망라했다. 각기 입맛에 따라 먹는 뷔페를 닮았다.

 소설은 우연히 왔다. 그가 좋아하는 브라질 뮤지션이자 작가인 쉬쿠 부아르키 (Chico Buarque)의 장편소설 『부다페스트』를 번역하다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했다. 장편을 시도했었다.

 “무식해서 용감했던 거죠. (웃음) 이런저런 방식을 몰라서 그냥 막, 두 달 동안 단편 8편을 썼어요. 짧은 기간에 단상이 떠올라 호흡이 짧게 쓸 수 있었죠.”

 서울대와 스위스 로잔 연방공과대(EPFL)를 거쳐 생명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싱어송라이터로도 굳건한 입지를 굳힌 그다. 노래도 잘하고 소설까지 잘 써낸 건 좀 불공평하다 했다.

 “노래는 못 하잖아요. (웃음) 다만 하고 싶은 건 집중해서 해요. 공상하는 시간이 많았던 게 도움이 됐죠.”

 소설을 잉태한 지난해는 그에게 ‘딴 짓의 시간’이었다. 공연과 방송출연, 5집 앨범까지 내달리기만 했던 재작년의 종종걸음을 접고 느리게 살았다. 보컬 레슨도 받고 피아노도 배웠다. 책도 많이 읽고 다른 음악도 많이 들었다. 무엇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늘었다.

 “천천히 걷다 보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 보여요. 세상의 재미나 아름다움은 섬세함에서 나오는 듯해요. 정말 작은 차이, 똑같지만 다른 것, 그런 걸 흘려 보내지 않는 거죠.”

 기왕에 용감해진 것, 실험정신도 발휘했다. 단편 ‘싫어!’에서는 경상도 사투리의 높낮이를 살리고자 억양 기호를 표시해봤다. “말이나 글을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없을까 고민하다 억양 표시를 해본 거에요. 억양 기호를 쓰니 글을 말로, 2차원적으로 표현할 수 있더라고요.”

 그는 말과 글에 관심이 많다. 언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촉수가 작품 곳곳에서 살아 움직인다. “말과 글은 문화를 담고 있고, 생명체 같아요. 사람의 명암을 보여주기도 하죠.” 마유·야화 등 등장인물의 독특한 작명도 눈에 띈다. 성별이나 국적, 시대를 특정할 수 없도록 모호한 느낌을 주려고 했다는 설명이다.

 “소설을 계속 쓰고 있으니 아마 주인공들이 섞여갈 듯해요. 레고 마을처럼요. 인물이 다시 등장하고 추가하고 배경도 덧붙여지며 ‘무국적 타운’이 되겠네요.”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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