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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살벌한 서울발 외신사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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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 핵 문제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서울발 외신 사진이 최근 부쩍 늘고 있다.

철조망으로 뒤덮인 비무장 지대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초병이나 판문점의 긴장된 남북 대치 상황이 사진의 주종을 이루고 있지만 종종 엉뚱한 사진도 눈에 띈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재개 가능성이 뉴스의 초점으로 등장하자 용산 전쟁기념관에 전시돼 있는 북한제 스커드 미사일 모형이 외신을 타기도 했다.

과거에도 남북관계가 경색 조짐을 보일 때면 외신은 서울 시민들의 민방위 훈련 장면을 즐겨 내보내곤 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 지하도에 대피한 시민들의 모습, 텅 빈 서울 시내의 모습에서 외국인들은 전쟁 직전의 한반도를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AP통신의 서울 주재 사진기자는 미국 본사의 요구에 의해 '긴장감 가득한 한반도'의 이미지를 찾기 위해 날마다 골머리를 앓는다고 한다.

"북한 핵 문제가 연일 미국 언론에 큰 비중으로 다뤄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입맛에 맞는 사진을 서울에서 찾고 있어요. 다소 과장된 이미지라는 생각도 들지만 미국 현지에서는 그런 사진이 먹히니 별 도리가 없지요."

사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북핵 문제가 아무리 큰 뉴스로 다뤄진다 해도 직접 북한에 들어가 취재할 방도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신의 이러한 보도 태도는 한국민들의 안보의식이나 위기의식과는 너무나 큰 거리가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섬뜩한 구호가 등장했지만 선거 결과에 따라 전쟁이 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국민은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도 남쪽 사람들은 금강산 관광을 하고 있고, 정부는 일관된 목소리로 대화에 의한 북핵 문제 해결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북한 핵 문제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정답인가? 매일같이 긴장된 철책선을 보여주며 극도의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는 외국 언론이 맞는가, 아니면 태풍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마치 아무일 없다는 듯 무사태평한 한국민의 태도가 맞는가? 정말 헷갈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외신 사진기자들이 하루가 멀다고 타전하는 살벌한 휴전선 철책 사진을 보면서 갖게 되는 의문이다.

최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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