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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검증? 재산부터 머릿속까지 더 혹독하게 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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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1일 서울 통의동 집무실에서 미국 하원 대표단을 접견하고 있다. 박 당선인은 이 자리에서 “북 추가 도발 시 국제사회와 함께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롬 마리노·번 뷰캐넌·엘리엇 엔겔 의원, 성 김 주한 미 대사, 박 당선인, 에드워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 [김형수 기자]

신상털기인가 당연한 인사검증인가. 인사청문회 후보자들에 대한 신상정보 공개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30일부터 연 이틀 “공직 후보자를 너무 공격적이고 죄가 있는 사람처럼 대하니 좋은 인재들이 (공직 진출을) 두려워할까봐 걱정”이라고 하자 새누리당은 31일 ‘인사청문회법 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신상 문제는 청문회에서 비공개로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 청문회 제도 개선의 주요한 방향으로 잡히는 분위기다. 국회에서의 공개 검증은 직무능력이나 업적·철학·소신 등을 대상으로 하자는 얘기다.

 권성동 의원은 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도덕성에 관한 문제는 비공개로도 충분히 검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철우 원내대변인 역시 “도덕성 검증에만 치우치면 능력이나 자질은 제대로 못 본다”고 거들었다. 이에 대해선 새누리당 안에서도 이견이 있다. 김성태 의원은 “자질 검증과 도덕성 검증을 분리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신상검증은 젊은 세대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인식하게 하는 큰 장점도 있다”(이종훈 의원)는 반론도 나왔다.

 민주통합당은 김용준 총리 후보자의 낙마는 박 당선인 측의 검증 소홀 때문 아니냐고 묻고 있다. 원혜영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용준 총리 후보자는 청문회를 시작도 안 했는데 낙마한 것”이라며 “열리지도 않은 청문회를 가지고 제도를 손질하자는 것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대표적 사례”라고 꼬집었다.

 새누리당이 말하는 미국의 사전 신상검증 제도도 “비공개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체계적으로 철저하게 검증한다는 데 무게가 있다”(전진영 국회 입법조사처 연구관)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인사청문에 앞서 행정부가 ‘신상털기’ 수준의 철저한 사전검증을 한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이 2009년 국제개발처장(USID) 후보자 선정을 놓고 “(후보자) 이력을 정리·검증하는 과정은 악몽이었다”고 말했을 정도다. 공식 발표에 앞서 후보자들은 재산상황진술서(SF-278), 국가안보직위진술서(SF-86), 개인정보진술서 등을 써낸다. 이들 서류에 본인·배우자는 물론 미성년 자녀의 1000달러 이상 주식·채권, 농작물 수입까지 기재해야 한다. 최근 7년간 접촉했던 해외 인사·기업과 방문국, 최근 3년간 자문했던 민간·노동단체도 써낸다. 개인정보진술서엔 칼럼·기고는 물론 인터넷 필명까지 적시해 ‘머릿속’도 검증한다. 알코올 중독 상담, 신용카드 연체, 전 직장에서의 해고 여부와 같은 세세한 신상 내역까지 적어야 한다. 민주당 윤관석 원내 대변인은 “김용준 후보자나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해 이런 것의 절반이라도 검증 했느냐”고 물었다.

 미국에선 행정부가 사전검증을 해도 별도의 언론 검증 때문에 낙마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대부로 불리던 톰 대슐 보건장관 지명자는 체납한 세금을 뒤늦게 낸 게 보도되면서 지명이 철회됐다. 1993년엔 조 베어드 법무장관 지명자가 불법 체류자를 보모로 쓴, 이른바 ‘보모(nanny) 스캔들’로 청문회에 서지도 못하고 낙마했다.

글=채병건·이소아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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