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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하오! 중국] 14. 중화 개척정신의 산 기록 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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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의에 빠져 원망과 한탄을 했고 한 때는 낙담을 했었죠.희망을 잃고 매일 술로 지새는 막막한 인생,영혼을 잃은 내 인생은 마치 허수아비 같았죠.인생은 바다의 파도 같은 것,올라갈 때도 있지만 내려갈 때도 있는 법…운명의 3할은 하늘이 정하지만 나머지는 내가 노력해 얻는 것,결국 싸워야 이길 수 있는 것이랍니다…”.

타이베이시 가라오케에서 술에 취한 대만인들이 즐겨 부르는 ‘싸워야 이길 수 있다(愛▶변▶才會▶영▶)’라는 제목의 노래가사다.약 10년 전에 처음 불려진 뒤 이제는 대만인 누구나 부르는,일종의 국민가요다.

한때 리덩후이(李登輝)총통이 집권할 당시인 1990년대 초반 무렵 대륙에 대한 정치적인 반감의 표현으로 이 노래가 이용되기도 했지만 사실은 4백년이나 되는 대만 이민개척사의 애환을 대변해 주는 노래다.

중국 대륙의 동남해안으로부터 2백㎞ 거리에 있는 3만6천㎢ 넓이의 중국 최대 섬인 대만은 강력한 해금(海禁:바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함)정책이 펼쳐졌던 명(明)대 말까지 말레이.인도네시아계 원주민들만이 상주하던 미개척의 땅이었다. 대만(중국어로 타이완)이라는 이름도 당시 대만 남부에 도착한 한족들이 원주민 마을이었던 '타이오완'의 이름을 섬 전체의 명칭으로 받아들이면서 생겨났다.

그 무렵 전제왕권의 폐해와 그로 인한 일상적인 굶주림을 피해 대륙의 푸젠(福建)에서 대만으로 건너온 한족들은 가시밭길을 헤치며 이 곳을 비옥한 농토로 개척했다. 이어 네덜란드의 점령을 거쳤고 청(淸)대에 들어와 다시 중국 대륙의 왕조가 처음 행정관서를 두기까지 이곳은 중국 대륙으로서 볼 때는 버려진 땅이었다.

열대의 잡초와 독충들을 물리쳐가며 농토를 개간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강인함은 대만식의 개척정신을 낳았다. 하지만 오늘날 대만의 문화 한 구석에는 일종의 비애감도 담겨져 있다.포르투칼 사람들에게 '포모사(아름다운 섬)'라고 불렸던 이 지역에 외세와 대륙 정권이 들어오면서 적잖은 소용돌이가 일었기 때문이다.

대만은 청일전쟁에서 중국이 패하는 바람에 일본에 할양돼 50년의 식민지를 거치고,이어 대륙에서 패배한 국민당 장제스(蔣介石)정권이 들어오면서 수천명의 인명이 희생당한 '2.28 사건'을 맞이한다.

국민당군의 진주 과정에서 벌어진 현지인들과의 마찰은 국민당 정부의 대대적인 현지 지식인 체포.투옥.학살로 이어졌고, 이는 국민당 철권통치 당시 정식 제기되지 못하다가 최근에 와서야 거론되기 시작했다.

대만의 세계적인 영화감독 허우샤오셴(侯孝賢)의 '비정성시(悲情城市)'는 바로 이 사건이 일어났던 대만을 무대로 하고 있다. 일본의 통치 기간도 대만인들에게는 질곡의 삶이었지만 대륙으로부터 패주해온 국민당의 통치는 대만인들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것이다.

요즘 국제사회에서 자주 이야기되는 '대만독립'의 정서적 뿌리는 여기에 있다.왕조의 수탈과 기아를 피해 도망쳐 나와 대만을 훌륭하게 가꿔놓았지만 항상 그 과실은 대륙인들이 따먹는다는 반감 때문이다.

대만 국립대학 민족학과 린슈처(林修澈)교수는 "대만의 정신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세상은 내 손으로 직접 개척한다(自己打天下)'는 것이다.명.청 왕조에 버림 받은 사람들이 스스로 농토를 개척했고 이어 국민당 정부의 통치를 받으면서도 온갖 고난을 다 이겨내야 했기 때문에 대륙계 정부에 의지하는 것 보다는 정착민 스스로 알아서 생업을 꾸려가는 문화가 일찌감치 발달했다. 대륙에 대해 갖게 되는 의구심은 항상 이런 심리에서 출발한다"고 소개했다.

다른 한편으로 볼 때 대만은 중국인들의 이민 습속이 가장 잘 남아 있는 사회다. 중국의 북방에서 남방으로 이주한 한족의 후예들이 약 4백년 전에 다시 옮겨오기 시작해 근세기까지 이민행렬을 멈추지 않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만에서는 이민사회만이 지닐 수 있는 즉흥성과 현실성, 혈연과 지연을 중심으로 한 파벌의 형성,폭력조직의 발호, 개척정신을 떠받쳐 주는 근면함 등이 골고루 관찰된다.

타이베이(臺北)와 가오슝(高雄) 등 대도시를 제외한 대만의 향촌 사회는 아직도 혈연과 연고지 중심의 지방조직이 눈에 띈다. 예를 들자면 각 혈연조직들은 대륙의 조상을 '당산조(唐山祖)'라고 부르며 이 공동 조상의 후예들이 서로 모여 돈을 낸 뒤 공동의 밭을 일궈 조상의 제사에 쓰이는 경비를 마련하는 식의 '공업(公業)'이 활발하다는 점이다.

지금도 대만의 지방 곳곳에 '린춰랴오(林□寮)' '장춰(張□)'등 사람의 성(姓)을 따서 지은 지명이 남아 있는데 이들은 모두 대만 이민 초기 각각의 성씨 집단들이 정착한 곳으로 보면 된다. 이들 혈연집단은 때로 대륙의 동향 출신들과 한 사회를 이루기도 하며 씨족과 씨족집단이 서로 뭉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대만에서 13년째 생활하고 있는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김헌홍(金憲洪)상무는 "대만의 중소기업이 특히 발달한 것도 그 배경을 따져 보면 이민으로 인한 혈연 중심으로 사회구조가 짜여졌기 때문"이라며 "대만 중소기업의 80% 가량이 가족 중심의 경영이란 점을 두고 볼 때 이러한 점은 더욱 명확해진다"고 말했다.

가족기업이 발달해 타이베이시 인근의 싼충(三重)을 중심으로 한 싼충방(三重幇)과 가오슝의 가오슝방(高雄幇)등 거대 지방세력으로 성장해 90년대 대만경제를 좌지우지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한 현상이라고 金상무는 소개했다.

대만의 사회에서 또다른 특징을 형성하고 있는 폭력조직도 이와 무관치 않다. 80년대 이전까지 악명을 떨쳤고 이제는 국제적인 폭력조직으로 성장한 주롄방(竹聯幇), 대만 현지 폭력조직으로는 최대 파벌을 형성하고 있는 톈다오멍(天道盟)등은 혈연과 지연을 중심으로 성장한 각 지방조직이 확대된 형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립 정치대학 외교학과 리밍(李明)교수는 "대만은 이민문화의 전통에 대륙계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데다 미국과 일본 등의 해양문화를 접목해 오늘날의 번영을 이룩했다"며 "대만 독립의 목소리도 있지만 아직은 소수에 머물고 있으며 현재 번영하는 대륙을 '기회'로 삼아 특유의 개척정신으로 새로운 발전을 모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광종 기자 kjyoo@joongang.co.kr>

*** 대만의 요리

대만 음식에는 초기 이민 정착의 역사에서 보이는 고단함, 1960년대 이후 불붙기 시작한 경제성장기를 거쳐 온 대만인들의 근면정신이 드러난다.

지도 상에서의 대만은 마치 고구마의 모습.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대륙의 푸젠(福建)과 함께 대만에서는 고구마가 많이 나온다. 초기 대륙계 이민들은 쌀이 모자라 고구마를 실처럼 썰어 말린 것으로 밥을 지어 쌀을 대용하기도 했다. 지금도 대만 말로 '한지치암(地瓜簽)'이라고 하는 고구마 말린 것으로 쌀과 같이 죽을 끓여 밥을 대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주식으로는 밥과 국수가 널리 쓰인다.

국민당 정부가 1949년 들어오면서 유행한 음식은 '쇠고기 탕면(牛肉湯麵)'이다. 대만의 수입토착형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쇠고기탕면은 중국 내 간쑤(甘肅)성 란저우(蘭州)의 것과 장쑤성(江蘇省) 난징(南京) 계통의 두 종류가 있는데, 대만에서 발전한 쇠고기탕면은 대만 이주 전 국민당 정부의 수도였던 난징(南京) 계통의 것이다.

아침에 주로 먹는 음식으로는 더우장(豆醬:한국의 두유격으로 일종의 콩국, 단 것과 짠 것, 뜨거운 것과 찬 것 등이 있음), 사오빙(燒餠: 밀가루 빵을 넓적하고 얇게 만들어 화로의 약한 불로 구워 내온 것), 유탸오(油條:기름에 튀겨낸 속이 비고 바삭바삭한 꽈배기), 단빙(蛋餠:계란에 파를 넣고 얇게 만든 밀가루 떡에 붙여 같이 기름에 부친 것)이 있다.

점심에는 루러우판(魯肉飯:잘게 썬 돼지고기로 만든 뜨거운 장조림의 일종으로 밥 위에 얹어먹는 음식.사진)과, 돼지갈비 또는 닭다리 튀김을 얹은 도시락을 애용한다. 모두 간편하고 실용적인 점이 특징이다.

이들은 일상생활에서 푸젠계 사투리(민남어)를 주 언어로 사용하고 있는 대만 내성인(內省人:대륙에서 국민당과 들어온 사람들은 외성인이라 부른다)들이 주로 자신의 전통음식이라고 주장하며 특별히 애정을 갖는 음식이다.

이러한 음식들은 부귀빈천을 떠난 모든 대만 사람들, 즉 공무원과 시민, 고용주와 노동자, 스승과 제자 등이 모두 즐기는 것들이다. 조그만 식당이나 길거리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도 얼굴을 맞대고 먹어왔던, 대만 경제발전의 '원기소'쯤 되는 음식이다.

도움말 김진호 LG건설 타이베이 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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