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경 헤매는 신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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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문이 발견, 세상에 신동이라 널리 알려진 네 살 박이 꼬마가 지금은 버림받아 굶주림 속에서 울고 있다. 서울 중구 장충동 1가구 한국대학관리소의 구석진 방안에서 한때 신동으로 각광받았던 김호산(4)군은 그 재주가 세상에 알려진 것이 도리어 화근이 되어 그 총명과 예지를 잃고만 있다.
작년 10월 10일자 대구일보엔「이런 일을 아십니까?」란 제목으로 호산군의 천재를 처음 세상에 알렸다. 곧이어 대구 영남일보가 이를 보도했고 이 기사를 읽은 박정희 대통령도 작년 12월 5일 호산군의 총명을 작 길러주라고 현금 5만원을 내려보냈다. 이 사실이 주간한국에 보도되자 호산군은 그때 신동으로서 세상의 빛을 보게되었다. 이렇게 되자 호산군을 맡아 훌륭한 신동으로 키우겠다는 독지가들이 마구 쏟아져 왔다.
호산군의 천재는 작년 8월 초순, 행상 나갔던 엄마 이숙현(28)씨가 주워온「엠·제이·비」깡통을 아빠 김충배(33)씨가 무심코 읽어 본데서 나타났다. 호산군은 아빠를 따라 분명히「엠·제이·비」라고 따라 읽었던 것이다. 김씨는 호산군의 머리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국민학교 1년 과정부터 공부시켰다. 한 달이 채 못되어 호산군은 3년 과정의 상용한자 1천5백자, 중학1년 과정의 영어를 모두 배웠다. 김씨는 아들의 천재를 키워주고 싶었다.
이렇게 호산군이 세상에 화제가 되자 먼저 모 제약회사에선 선전원을 보내어 『꼬마를 앞세워 돈을 벌자』고 제의해 왔다. 또 어느 자칭 부호는 자기가 대학까지 공부시키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김씨는 섣불리 신동이라는 아들을 맡길 수 없었다. 작년 12월 8일 모대학장을 지냈다는 한모(60)씨가 『신문을 보고 서울서 왔다』고 하며 『내가 수재학교 설치허가신청을 해놓았으니 호산군을 천재로 키워 줄 테니 나에게 맡기라』고 했다. 김씨는 작년 12월 9일 대구시 복현동 467에 있는 판잣집을 파고 한씨를 따라 서울에 왔다.
그러나 한씨는 호산군을 외면해버렸다. 수재학교 설치 운운도 새빨간 거짓이었다. 대통령이 내린 돈과 집 판돈으로 간신히 생활하던 김씨는 자취를 감춘 한씨를 찾아 헤맸다. 한씨를 찾아 만났으나『내일이 복잡하다. 호산군을 데리고 대통령에게나 가보라』는 차가운 말한 마디를 남기고 한씨는 다시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지나간 6개월, 호산군은 굶주림과 냉대 속에서 병마저 얻었다. 약 한 첩 쓰지 못한 채 헐어진 방 속에 누워있다. 아빠 김씨는 「리어카」를 끌었으나 입에 풀칠도 어려웠다. 이렇게 기진맥진한 김씨는 앓고 있는 호산군을 내려다보며『공연히 세상에서 떠들어서 서울에 데려다놓고 이 모양 이 꼴이 외었습니다. 대구에 그대로 놔두었더라면 가난하나마 속 편히 살았을 것을…』하며 세상을 원망하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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