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의 시시각각] "질문 간단히 써달라" ‘보청기 총리’, 문제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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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김용준 총리 후보자는 역사적인 한국인이다. 소아마비를 이겨내고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이 됐다. 75세 고령으로 대통령직 인수위원장까지 지냈다. 존재 자체가 사회의 진화(進化)를 말해주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국무총리가 되는 건 다른 문제다. 청력 이상이라는 중요한 하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양쪽에 보청기를 낀다. 보청기 노인은 대부분 청력이 제한적이다. ‘먼 소리’를 듣는 데에 특히 애로가 많다. 규모가 큰 회의, 강의나 설교, 몇 걸음 떨어진 TV 같은 걸 들을 때 종종 어려움을 겪는다.

 김 후보자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질문 7개 중 3개를 못 알아 들었다. 여러 차례 “다시” “뭐라고요?”라고 했다. 어떤 질문은 조윤선 대변인이 그에게 다가가 다시 말해주어야 했다. 김 후보자는 “내가 청력이 시원찮아서…”라고 했다. 그는 반말로 “질문할 사람들 간단히 써”라는 주문까지 했다.

 국무총리에게 건강한 청력은 필수다. 총리는 매주 국무회의에 참석한다. 2주에 한 번은 직접 주재한다. 국무위원들은 큰 테이블에 앉아 마이크를 이용한다. 발언은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진다. 음향 구조가 김 후보자가 절반이나 못 들었던 기자회견과 비슷하다. 앞으로 서울과 세종시 간 화상 국무회의도 열릴 참이다. 김 후보자에게 화상회의는 알아듣기 더 힘들 것이다. 국무회의 말고도 총리는 여러 회의를 주재하고 각종 행사에 참석해야 한다.

 국회 대정부질문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대정부질문은 국정에 관한 치열한 공방전이다. 단어 하나, 토씨 하나가 매우 중요하다. 총리가 잘못 알아들으면 혼선이 불가피하다. 총리는 기자들에게 했던 것처럼 “간단히 써 달라”고 할 것인가. 인수위 핵심 관계자는 “장관들이 대신 답변하면 된다”고 했다. 야당이 이를 허용할 리도 없지만 주요 국정을 답하지 못하면 과연 ‘책임총리’가 될 수 있을까.

 국무총리는 대통령 유고(有故) 시에 대통령이 된다. 그러므로 대통령 못지않은 신체적 능력을 지녀야 한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됐을 때 최규하 총리는 60세였다. ‘대체 대통령’으로서 그는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 탄핵을 받았을 때 고건 총리는 66세였다. 그는 두 달 동안 강건한 체력으로 정권의 활력을 지켰다.

 박근혜 당선인은 경호실장을 장관급으로 올렸다. 경호실을 강화하는 건 유고 상황에 대한 예방능력을 키우려는 것일 게다. 유고에 대해서 대통령은 예방뿐 아니라 대비책도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자신을 대행할 총리가 건강에 이상은 없는지 엄정하게 점검해야 한다. 김용준 총리는 ‘대체 대통령’에 문제가 없을까. 듣는 게 불편한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하면 장관들이 제대로 발언할 수 있을까. 정상회담이나 G20 정상회의에서 그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건강 같은 생물학적 조건은 후보자를 검증할 때 가장 기초적인 것이다. 청와대 인사 자료를 동원하지 않아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인수위 핵심 인사에 따르면 후보자 청력 문제는 인수위원장 활동에서 이미 드러났다고 한다. 그런데도 당선인은 그를 총리로 지명했다. 이런 것은 박근혜 인사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다.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는 당선인 동의를 받아 이명박 대통령이 결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낙마하면 책임은 최종적으로 대통령에게 있다. 하지만 김용준 총리 후보자는 순전히 당선인의 선택이다. 그런 중요한 인선을 많은 국민이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됐다. 당장 인사청문회가 문제다. 야당 의원들은 속사포처럼 질문을 던질 것이다. 못 알아들으면 후보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써달라고 할 것인가. 이런 소동과 우려를 국가가 왜 감수해야 하나. 75세 후보자는 애국적인 결단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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