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쨍그렁 사금파리 소리 나는’ 천의무봉 글쓰기를 기리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07호 26면

저자: 김윤식 출판사: 문학동네 가격: 1만7000원

“작가란 작품에 비해 이차적”이라며 ‘작품 제일주의’ 원칙을 고수해 온 완고한 문학평론가 김윤식에게도 박완서만은 예외였던지 2주기를 맞아 작가를 추모하는 책을 펴냈다. 『내가 읽은 박완서』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작가와 작품에 대해 논했던 글들을 엮은 ‘박완서 문학지도’다.

문학평론가 김윤식이 박완서를 추억하다 …『내가 읽은 박완서』

75년 일면식도 없는 신인작가의 작품을 추천한 그에게 대학 강의 직후 찾아온 한 제자가 작가의 맏딸임을 밝히면서 시작된 인연. 며칠 후 자줏빛 한복 차림으로 방문한 중년 여인과의 40년 우정은 수십 차례 동행한 해외여행 기념사진들에서 짐작할 수 있다. 오랜 세월 박완서를 읽고 평했지만 ‘과연 소설 해설 및 평가에 육박했는지 스스로도 자신하지 못할 정도’라는 저자의 고백처럼 박완서는 저자에게 단순한 현상으로서의 작가를 넘어선 존재였다.

작가의 문장을 ‘천의무봉’이라 극찬해 평론가의 자질을 의심받기까지 한 저자. 그 애정은 개인적 인연을 초월해 소설 자체에 대한 문학인으로서의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춘기 연애담으로 주저앉은” 소설의 출구를 걱정하며 순종 소설이란 무엇인가를 구해온 그에게 어쩌면 박완서는 그가 주장한 소설론의 현신이었다.

70년 ‘나목’으로 등단한 박완서는 60년대의 엄숙주의로부터 벗어나 대중이라는 광범한 독자층을 형성한 전대미문의 작가다. 사람 골치 아프게 하지 않는 ‘망설임 없음’으로 주눅 든 독자를 해방시킨 덕분인데, 이는 자기가 가장 잘 아는 세계를 진실되게 묘사했기에 가능했다. 작가와 독자의 지적 게임으로 변질된 근대 소설에 젖어 있던 저자는 이 낯선 존재에 대해 ‘소설이 이렇게 진실해도 되는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6·25로 인한 가정의 파멸, 어머니의 고통과 모녀 대결구도에서 빚어지는 심리적 메커니즘은 박씨의 유일한 창작방법론이었다. ‘천의무봉’이란 찬사에 값하는 유려한 문체와 빈틈없는 언어 구사는 그 이야기가 인간 박완서의 체험, 삶의 깊이에서 비롯된 사실 자체이기에 가능했다. 사실 자체야말로 천의무봉의 근원이자 대중성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작가조차 ‘오직 기억에만 의존한 글을 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지’ 스스로 의심했지만, 저자는 ‘남에게 받아쓰게 할 수 없는 기억’의 회상 형식이야말로 소설의 적자(嫡子)라 평했다. 자아와 세계, 내면성과 외부라는 근대 시민사회의 이원화로 인해 본래적 가치와 시장가치의 갈등 속에 놓이게 된 인간 영혼은 찢김에서 벗어날 수 없고, 이 분열을 초극하는 방식으로서 소설이 존재가치를 갖는다는 것이다. 오직 기억 속에서 분열을 통일시키는 것. 6·25 체험에서 해방되기 위해 박완서가 작가가 된 이유이자 작가 박완서가 거인인 이유기도 하다.

저자가 박씨의 최후작으로 꼽는 『그 남자네 집』에서 처녀작 ‘나목’ 시절 글쓰기의 신바람이 여전히 원형 그대로 꿈틀대는 것은 마치 베토벤의 후기 스타일이 조화와 원숙에의 도달이 아닌 더 격렬한 파열인 것에 비유할 만한 위대함이다. 마지막까지 ‘쨍그렁 사금파리 소리나는’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창조의 원동력이라 밝힌 ‘정욕’을 잃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지배하는 회색 세계에 도달할 수 없더라도 초록빛 생명의 황금나무를 간직하기를 택한 그이기에 영원한 청춘의 글쓰기가 가능했던 것이 아닐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