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간장·고추장, 유럽 특급 요리사들 혀끝 사로잡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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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1일 음식박람회 ‘마드리드 퓨전’에서 한국의 장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자우마 비아르네즈 알리시아 연구소 수석 셰프. 800여 명의 관객이 꽉 들어찬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 박람회장’ 강당에서 “한국의 장 덕분에 스페인의 맛이 더 성숙해졌다”고 말했다.

“한국의 장(醬)은 음식의 맛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건강하게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훌륭한 식재료입니다.”

 지난 6개월 동안 한국의 장을 연구한 스페인 알리시아 연구소 자우마 비아르네즈(35) 수석 셰프는 “간장·된장 등 한국의 장이 유럽의 식문화 수준을 한단계 높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바르셀로나에 있는 알리시아 연구소는 스페인의 세계적 셰프 페란 아드리아가 카탈루냐 주정부 후원으로 2007년 문을 연 요리 연구소다. 아드리아는 영국 잡지 ‘레스토랑’ 선정 ‘세계 최고 레스토랑’에 다섯 차례나 꼽힌 ‘엘불리’의 대표 요리사. 알리시아 연구소에서 스페인 이외 다른 나라 음식을 연구 주제로 삼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비아르네즈는 21∼23일(현지시간)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열린 음식 박람회 ‘제11회 마드리드 퓨전’에 참가, 그동안의 장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또 한국의 장을 활용한 20가지 요리를 만들어 ‘마드리드 퓨전’을 찾아온 8000여 명의 세계 요리 관계자들에게 맛보였다.

음식 박람회 ‘마드리드 퓨전’ 행사장에서 된장요리를 시식 중인 관람객들.

 비아르네즈는 “장은 분명 식물성 재료인데도 고기 맛이 난다”며 “육류 섭취가 너무 많은 현대인들의 식습관을 장이 바로 잡아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알리시아 연구소의 ‘장 연구’는 국내 식품업체 샘표식품과의 협업을 통해 이뤄졌다. 연구 방향은 ‘스페인 등 유럽의 음식에 한국의 장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겠느냐’였다. 간장·된장·고추장·쌈장 등이 기존 유럽 음식의 어떤 식재료, 어떤 요리법과 어울리는지 연구해 150개의 레시피를 만들었다. 유럽 셰프들에게 아직은 생소한 식재료인 한국 장의 활용법을 알려주기 위한 자료다.

 “된장은 계란과 잘 어울려요. 계란 요리에 된장을 약간 집어넣으면 평범한 계란이 고소한 유정란 같은 맛을 내죠. 고추장은 새우 요리와 찰떡궁합이고요. 간장은 채소 요리에 잘 맞습니다.”

알리시아 연구소에서 제안하는 장 활용 음식들. 1 초간장으로 담근 채소 장아찌. 피클의 단순한 신맛이 아닌 장의 감칠맛이 더해졌다. 2 된장을 넣은 푸아그라 테린. 푸아그라의 느끼한 맛을 덜고 본연의 진한 맛을 살렸다. 삼겹살과 된장의 조화나 마찬가지다. 3 상추 숯불 요리. 카탈루냐 향토음식인 상추 요리에 한국의 전통간장을 응용한 콩 발효 소스 ‘연두’를 끼얹었다. [사진 샘표식품]

 비아르네즈는 “한국 장의 세계화를 위해서도 다른 나라의 기존 요리에 어떻게 잘 녹아들어갈지 연구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유럽시장에서 자리잡은 일본간장을 예로 들며 “이는 유럽 사람들이 매일 스시를 먹어서가 아니라, 유럽 요리에 적용시킬 방법이 많아서”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제 한국의 장도 그 첫발을 내디딘 셈”이라고 덧붙였다.

 ‘마드리드 퓨전’에 참가한 세계적인 스타 셰프들도 한국 장 연구 결과에 관심을 나타내며 장 예찬론에 동참했다. 미슐랭 3스타 셰프인 파스칼 바르보(프랑스)는 “한국의 장은 소금을 대체해 간을 할 수 있는 건강 소스”라고 말했고, 스페인의 미슐랭 3스타 셰프인 조르디 로카는 “일본 장보다 밀도가 높아 힘이 느껴진다”고 평했다. 또 미슐랭 2스타에서 올해 미슐랭 3스타로 승격한 스페인 셰프 끼께 다코스타는 “2011년 벨기에에서 열린 음식 관련 심포지엄에서 한국음식을 처음 접한 뒤 한국의 장맛을 알게 됐다”며 “장은 음식의 맛을 깊게 만든다”고 말했다. 다코스타는 다음 달 6일부터 스페인 알리칸테 지역에 있는 그의 식당 ‘엘포블렛’에서 한국 장을 활용한 3개의 요리를 선보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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