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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명태가 냄비 한가득 속이 확 풀리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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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호 22면

1 생태찌개. 푸짐하게 들어간 싱싱한 생태에 알과 곤이가 함께 보글거리기 시작하면 마음이 벌써 포근해진다.

명태만큼 우리들과 가깝게 지내온 생선이 있을까. 사시사철 내내 버릴 것 하나 없이 여러 가지 형태로 우리 밥상을 풍성하게 해주고, 제사상에도 빠지지 않는 ‘국민생선’이다. 온몸에 실타래를 감고 두 눈을 부릅뜨고 잡귀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면서 어딘가 매달려 있기까지 한다. 강산에라는 가수는 ‘명태’라는 노래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노래 되고 시가 되고 약이 되고 안주 되고 내가 되고 니가 되고…감사합니데이”라고 우리의 인연과 애정을 종합적으로 노래해줬다.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10> 아야진 생태찌개

2 아야진에서 사용하는 생태. 눈이 또렷하고 탱탱하다. 참고로 대구와 명태를 구별하는 방법은 명태의 경우 아래턱이 더 길고 대구는 반대다. 3 아야진 내부.

애정이 깊고 넓은 만큼 먹는 방법도 다양하다. 생으로, 반쯤 말려서, 바짝 말려서, 얼려서, 얼렸다 다시 말려서 등등 복잡다단한데, 겨울에 먹는 명태 요리의 최고봉은 역시 얼리지 않은 생태로 끓여내는 생태찌개다. 산란기여서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알이 가득 찬 신선한 생태로 끓인 얼큰한 찌개는 추운 날씨로 움츠러든 몸과 마음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위로해 준다.

1등급 생태를 비린내·잡미 없게 손질
추운 겨울철 내가 참새 방앗간처럼 찾는 생태찌개 집은 서울 삼성동에 있는 ‘아야진 생태찌개’다. 이 집을 자주 찾는 이유는 우선 생태가 싱싱하고 푸짐하기 때문이다. 겨울 깊은 바다의 서늘함이 느껴지는 싱싱한 생태가 넉넉하게 보글거리는 냄비를 마주하고 앉으면 마음이 먼저 푸근해진다.

비린내나 잡미는 전혀 느껴지지 않으면서 깔끔하고 얼큰한 국물 맛이 또 일품이고, 여기에 잘 맛이 배어든 부드럽고 달콤한 생태 살이 입안에서 즐겁게 부서져 내리는 것이 참 귀한 진미다.
이곳을 운영하는 김숙자(65) 사장은 보기 드문 성공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분이다. 강릉에서 오랫동안 음식점을 크게 했던 분인데 태풍 루사로 피해를 보고 설상가상으로 그 지역에서 불경기가 계속되면서 장사가 안 돼 빚이 계속 늘어갔다. 자녀들에게까지 피해를 주기 싫어 식당을 정리하고 예순 살의 늦은 나이에 돈을 벌어 빚을 갚겠다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아는 분의 식당에 사정을 해서 설거지 하는 일자리를 어찌 얻었다. 그런데 20여 일 만에 주방장이 주인하고 싸우고 그만두는 바람에 사람이 없어서 덜컥 음식 조리를 맡게 되었다. 옛날 음식점 하던 솜씨로 생태찌개를 끓여냈는데 이것이 인기를 얻으면서 그 식당이 장사가 아주 잘되었다. 1년쯤 일하다가 몸이 아파 쉬고 있는데 식당에 손님으로 왔다가 음식 솜씨에 감탄을 했던 분이 찾아와서 동업을 제안했다. 자신은 자본과 관리를 맡을 테니 음식을 맡아서 함께 음식점을 해보자고.

좋은 기회다 싶어 고향 지역 이름을 딴 ‘아야진 생태찌개’를 함께 오픈한 것이 2007년이었다.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을 했더니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장사가 잘되기 시작했다. 만 5년이 지난 지금은 대기하는 손님들이 매일 줄을 설 정도로 성공한 식당이 되었다. 덕분에 빚도 모두 갚았고 돈도 좀 벌었다. 환갑이 다된 나이에 인생 밑바닥의 궁지에 몰렸던 분이 인생역전을 하게 된 것이다.

이 대단한 분이 얘기한 맛있는 생태찌개 만드는 법은 한마디로 기본에 충실한다는 것이었다. 우선 가장 좋은 생태를 사용한다. 비싸더라도 가장 싱싱한 1등급 생태를 사용하고, 공을 많이 들여 생태를 가능한 깨끗하게 다듬어 비린내와 잡미가 없도록 한다. 그리고 육수도 최고급 재료를 사용해 오랫동안 끓여 깊고 풍부한 맛이 나도록 정성껏 준비한다. 생태의 양도 다른 집보다는 더 푸짐하게 많이 넣는다.
이곳에서는 밑반찬으로 내는 김도 다른 곳과 다르게 준비한다. 이미 구워진 맛김을 사서 사용하지 않고 생김을 직접 구운 다음에 손으로 뜯어서 손님 상에 낸다. 가위로 자르면 맛이 떨어진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 세심한 정성까지 하나씩 모여 이 집의 음식을 다른 곳보다 특별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올겨울에는 날씨가 유난히 춥다. 지구온난화에 심술이 난 ‘동장군’ 탓인지, ‘눈의 여왕’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생태찌개 같은 음식이 있으면 추위도 잠시 옆으로 밀쳐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야진 생태찌개 서울 강남구 삼성동 150-2 전화: 02-555-2680 (*예약을 해야 한다. 손님이 몰릴 때는 예약을 안 받고 선착순으로 할 때도 있다. 주말에 가면 좀 한가하다.)


음식, 사진, 여행을 진지하게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음식이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마케팅·리서치 전문가. 경영학 박사 @yeongs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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