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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가 전단을 내민다 받아야 하나 외면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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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점심시간이다. 열린 축사 문으로 우르르 양떼 쏟아지듯 사람들이 순식간에 큰길을 가득 메운다. 부근에 오피스빌딩이 많은 탓이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식당으로 가는 길에도 두세 명씩 꼭 마주치는 분들이 있다. 전단 돌리는 아주머니다. 5000원짜리 한식 뷔페, 새로 생긴 치킨·피자집, 헬스·요가 겸용에 운동복·수건까지 준다는 ‘월 3만원 서울 최저가’ 피트니스클럽…. 내미는 전단을 받을 때도 있지만 약속시간이 촉박할 때는 무시하고 지나간다. 여기에도 머피의 법칙이 적용되는 걸까. 남들은 잘도 지나치던데, 내 눈망울만 유독 순진해 보이는 건지 몇 걸음 앞에서부터 알아보고 다가오는 것만 같다.

 회사 선배는 딸이 대학생이던 시절 전단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아빠, 누가 길에서 전단 내밀면 꼭 받아주세요!”라고 호소한 이후 되도록 받는다고 한다. 한 국회의원 부인은 가던 걸음 되돌려서라도 전단을 챙긴다고 했다. 선거운동 기간에 남편 이름이 새겨진 명함형 전단을 돌리다 보면 별별 일을 다 겪는단다. 받자마자 땅에 버리고 발로 밟는 사람도 있다. 왈칵 치솟는 눈물을 참고 얼른 주워 흙을 털어낸다. 그러니 아주머니들에게 동병상련을 느낄 만도 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음식점의 창업 후 5년 생존율은 17.9%다. 5명 중 4명이 다섯 해를 넘기지 못한다. 전단 하나하나에 정치생명에서 베이비부머 자영업자의 밥줄, 알바 아주머니의 일당이 걸려 있다. 무게가 가볍지 않다. 전단 크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통 장당 30원 안팎이 떨어진다고 한다. 1000장 돌리면 3만원. 보통 5~6시간 걸린다니 요즘처럼 추운 겨울에 쉽지 않은 일이다.

 옥외광고물에도 나름 변천사가 있다. 나는 어른남자들에게 고민이 다섯 가지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초등학교 때 깨쳤다. 전봇대마다 붙어있던 ‘남성 5대 고민 한번에 해결’ 광고물 덕분이다. 문제는 부착형이든 현수막이든 아파트 투입물이든 허가받지 않은 광고는 다 불법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대도시 유흥가는 낯뜨거운 불법광고물 공해가 상당히 심각하다. 많은 지자체가 수거·제거하느라 애를 먹는다. 65세 이상 노인들이 불법 벽보·전단을 가져오면 보상금을 주는 곳도 많다. 학생들이 모아오면 봉사점수를 인정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전화방·폰팅 같은 유해업소 광고 전단은 거꾸로 호기심을 자아내 청소년에게 비교육적이라는 우려도 크다. 그래서 남양주시 같은 곳은 학생자원봉사활동 인정 제도를 일찌감치(2009년) 폐지했다.

 오후 1시 전후. 다시 축사 문을 향해 밀려드는 인파 속에서 전단 아주머니들의 눈이 반짝거린다. 두터운 외투에 목도리를 칭칭 감았는데도 얼굴이 빨갛게 언 아주머니가 다가와 전단을 내민다.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글=노재현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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