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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관계법률 개정논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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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금까지 야당이 선거관계법률의 개정을 꾸준히 주장해온 데 대해 정부·여당은 그 필요성을 전반적으로 부인해왔다.
그랬던 것이 주월군의 투표권이 문제가 되자, 정부·여당으로서는 선거관계법률의 부분적인 개정을 고려치 않을 수 없게된 듯하다. 4만 명에 달하는 주월 국군의 투표권은 마땅히 행사되도록 해야할 것이지만, 이에는 여러 가지로 까다로운 법적·정치적 문제가 개재될 것 같다.
법제처당국은 주월 국군의 투표권을 행사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서 임시특례법을 제정하든지, 혹은 현행 선거법을 개정하든지 두 갈래의 구상을 세우고 있다 한다. 그중 어떤 것이 채택되어 주월 국군의 투표권행사가 가능케 된다고 하면 60만이나 되는 재일 교포의 투표권도 당연히 고려에 넣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해외에 나가있는 국민의 투표권을 행사케 하기 위한 입법조치는 그 기술면에 있어서 매우 신중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해외에 나가 있는 국민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입법조치를 강구한다는 것은 물론 필요한 일이지만, 이 문제가 선거관계법률 개정에 있어서 점하고 있는 비중은 결코 큰 것은 아니다. 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민중·신한 양당이 내세우고 있는 선거관계법률개정 주장이나, 또 중앙선거관리위의 위원장 사씨가 순수한 선거관리 면에서 내세운 관계법률개정의 필요성 주장에 대해서 정부·여당이 과연 어느 정도의 성의를 가지고 대해주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여태껏 정부·여당은 언필칭 법개정의 필요는 없다. 현행법의 보다 적절한 운용이 긴요하다하면서 선거관계 법률의 개정을 전적으로 거부해왔다. 정부·여당의 완강한 법개정기피는 주로 선거정략에서 나온 것이지만, 결코 타당한 것이 못된다. 왜냐하면 여·야의 정략적인 주장을 떠나서 순전히 법제상 미비한 점만 지적하더라도 회계책임자가 처벌을 받으면 국회의원당선자의 당선이 무효로 되는 점, 무소속출마가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소속 의원이 생겨난다는 것, 국회의원선거의 무효에 의한 정당득표수 변경에 따른 전국구의원 배정조정규정이 없는 점, 지구당 해체신고규정이 명확치 않은 점, 선거인 명부 작성권이 위에 이관돼 있지 않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에 넣는다면 선거관계법률의 고정 필요성이 전무하다고 하는 정부·여당의 주장은 하나의 억지부림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정치적인 면에서 고찰하면 무소속의 입후보를 금지하고 있는 현행 헌법의 지속을 전제로 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다음 세가지면에 있어서 법률개정이 있어야한다. 그 첫째는 타당입후보를 지원할 수 있는 법적 소지를 마련하는 것이다. 무소속이나 유소속이 타당 입후보를 지원하는 정치활동을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은 국민의 참정권행사에 대한 원천적인 간섭일뿐더러 재야정당의 연립전선 형성을 사실상 불가능케 하고 있다. 선거시기가 박두하여 옴에 따라 야당의 대통령 후보 단일화 주장이 여론의 강력한 뒷받침을 받게 되는데 우리 사회에 있어서 후보단일화가 실현되지 않는 까닭은 야당지도자들의 자각부족에 있다기보다 현실적으로 연립전선을 형성할 수 있는 법적 소지가 없다는데 기인하고 있음을 솔직히 시인할 필요가 있다.
현 집권당의 입장으로 보면 야당진영을 사분 오열의, 상태에 빠지게 하고 선거를 치르는 것이 승산을 확실하게 해주기 때문에 법적으로 연립전선을 형성할 수 있는 토대조차 만들어 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분할해서 통치하는 정책 내지 분열시켜서 승리하는 정책은 대의민주정치의 긴 안목으로 보아 절대로 옳지 않다. 공화당집권이 영속할 수도 없고, 또 영속해서도 안 되는 것이라면 야당이 뭉쳐서 정권을 인수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게 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이익의 당연한 요구인 것이다.
둘째로 인구의 자연증가나 이동상황을 고려에 넣어 인구가 팽창한 지역에 있어서의 선거구는 반드시 재조정되지 앓으면 안 된다. 선거를 1년 앞두고 지역선거구를 전반적으로 조정한다고 하면 여당의「게리·만더전술」때문에 근본적인 혼란이 일어날 것이요, 이는 결코 국민이 원하는바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서울시 같은 경우 인구가 30만을 넘는 구에서 1명의 대표 밖에 선출치 못하는 상황을 그대로 방임할 수 없다. 국민의 참정권을 평등히 계산한다고 하면 전남 진도처럼 인구 10만 이하가 1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데 서울시 몇 몇 구처럼 인구 30만이 넘으면서 1명의 대표밖에 선출치 못 한다고 하는 것은 모순도 이만 저만이 아닌 것이다.
세째로 선거인명부작성은 중앙선위가 맡도록 해야한다. 말단행정 기관이 중심이 되어서 하는 선거인 명부작성은 대리투표, 유령투표 등 갖가지 선거부정의 요인을 이룬다. 우리 사회처럼 선거전에 있어서 행정부가 집권당의 앞잡이가 되기 쉬운 사회에 있어서는 선거인명부의 작성과 투표관리까지를 모두 중앙선위에 관장시키는 것이 현명하다. 지난날의 경험에 비추어 중앙선위가 반드시 엄정 중립을 지키고 공명정대하리라고 믿어지지 않지만 그래도 중앙선위의 선거관리기능 확장은 집권당의 수족이 되기 쉬운 말단행정기관에 선거관리를 맡기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이상 모든 것은 우리가 보는바 선거관계법률의 개정의 최저한의 필요요, 요구이다.
정부·여당은 선거관계법률개정을 덮어놓고 기피할 것이 아니라 당리당략을 떠나서 제도의 합리적인 개선에 적극 호응해 주기를 요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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