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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것이 경쟁력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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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텔레비전이 등장한 이래 가장 큰 변화가 밀려오고 있다. 한때 부자들의 상징이었던 완전평면 TV 세트는 이미 주류에 접어들었다. 그렇다면 슬림형 평면화면이 과거의 브라운관 TV보다 정말로 나은걸까?

많은 신형 LCD 모니터들이 PC모니터와 텔레비전 수상기 겸용으로 나오고 있다. 필립스 신형(1)의 출시는 올 연말로 연기됐다. LG의 15인치 LCD 모니터(4)는 가볍고 휴대하기 쉽다.

샤프사의 아쿠오스 TV(2)는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다. 파나소닉사의 TH-15DTX1(3)은 LCD 모니터를 웹 브라우징, TV 수상기, DVD 플레이어, CD 플레이어 기능과 결합시킬 수 있다.

날씬한 것이 섹시한 이 세상에서 텔레비전에서도 뚱뚱한 것은 촌스러운 것이다. 대부분의 현대기기가 작아지고 있지만 우리가 존경할만한 텔레비전은 여전히 크고 거추장스럽게 우리 거실을 독차지하고 있다.

이제 오랜 기다림 끝에 텔레비전이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처음으로 크고 얇은 화면을 가능하게 만든 기술의 발전 덕택에 신세대 초슬림 디지털 화면이 우리의 가정을 공략하고 있다.

화면을 보는 각도나 빠른 움직임에의 반응 등 일부 화질은 아직 개선해야할 점이 있다. 하지만 이 삐쩍 마른 새 TV는 아시아인들에게 꽤 괜찮은 선물이 될 것같다. 많은 아시아인들이 살고 있는 좁은 아파트에서 구형 텔레비전은 가뜩이나 부족한 거실 공간을 잡아먹고 있다.

사무직에 종사하는 일본인 오카모토 게이코는 그녀와 가족들이 새로운 슬림형 평면 TV에 만족해한다고 말한다. "내 여동생은 창문옆 작은 책상위에 평면 TV를 놓을 수 있었어요. 화질도 아주 선명했고요."

오카모토는 부엌에 놓을 슬림형 TV를 한 대 더 살 계획이다. "그럼 요리하는 중에도 TV를 볼 수 있잖아요."

슬림형 평면 TV가 대신할 일들을 생각한다면 오카모토가 흥분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일반 텔레비전 역시 지난 80년간 써왔던 음극선관(CRT) 기술로 영상을 보여준다. 종 모양으로 생긴 음극선관(브라운관) 뒤쪽에 전자총이 전자들을 쏘아줌으로써 영상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오늘날 홈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에서 많이 쓰이는 큰 화면은 더 긴 브라운관을 필요로 하게 되고 이는 텔레비전이 더 커져야 함을 뜻한다.

해결책은? 브라운관을 제거하는 것이다. 평면TV의 첫번째 형태는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1998년 후반 출시됐다. 하지만 32-60인치짜리의 수천달러씩 하는 이 물건은 일반가정에는 너무 비쌌다. 이 제품은 회사 회의실이나 부유한 영화광들의 가정 영화관용으로 주로 사용됐다.

네온 사인에서 사용되는 기술과 기본적으로는 같은 플라즈마 화면도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통적인 TV를 궁지에 몰아넣은 것은 노트북에 주로 쓰이던 액정화면(LCD)이었다.

전류 흐름에 반응하는 크리스털 액정이 선호되면서 전자총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액정들은 개별적으로 온, 오프되고 그 결과로 색깔있는 점들이 화면을 만들어낸다. 액정은 두개의 유리판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벽에 걸 수 있는 불과 몇 cm 정도의 두께만을 갖는다.

얇다는 것이 유일한 장점은 아니다. 각 픽셀들이 개별적으로 조정되기 때문에 LCD는 음극관 TV보다 해상도가 선명하다. LCD는 다양한 조명 속에서도 볼 수 있고, 특히 반사되지 않아 낮에 보기 적합하다. LCD는 또한 음극관처럼 깜빡거리는 일도 없어서 눈이 덜 피로하다.

이런 모든 특징들로 인해 구형 TV를 볼 날은 그리 오래 남지 않은 듯 하다. "음극관 TV가 아직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3-5년내에 그렇게 될 것"이라고 가트너 그룹의 마크 마제비시우스는 전망한다. 대량생산의 이점으로 LCD 모니터의 생산단가는 더 싸지고 있다.

"처음 노트북을 만들 땐 LCD 모니터 한 개를 생산할 때마다 3개는 버려야 했다"고 마제비시우스는 말한다. 이제 불량률은 떨어졌고 가격도 하락했다. LCD 모니터는 이미 데스크탑 모니터에서도 보편적인 것이 됐다. 대형 화면을 만들 정도의 경제성이 확보된다면 텔레비전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질 것이다. LCD TV 화면은 28인치까지 커질 수 있다. 한국의 삼성전자는 최근 40인치 LCD 모니터를 개발하기도 했다.

샤프사(社)는 새로운 화면시장을 놓고 다투는 전자회사들의 경쟁에서 우위에 서 있다. 텍사스 소재 시장조사회사 디스플레이리서치사에 따르면 샤프사의 아쿠오스 브랜드는 세계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다. 아쿠오스는 전세계 LCD TV의 4분의 3이 팔리는 일본에서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

전자제품 대리점들은 슬림형 평면 TV 덕분에 전시공간을 과거보다 2-3배에서 4배까지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샤프사는 올 연말이면 LCD TV가 전통적인 TV 판매를 따라 잡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샤프사는 슬림형 평면화면이 미래의 TV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샤프사는 또한 2005년까지 음극관 TV 생산을 중단할 계획이다.

이런 경향과 더불어 평면 화면이 기본적으로 우리의 보는 방식까지 바꿀 것이라는 인식도 널리 퍼지고 있다. 로얄 멜버른 기술연구소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는 로제타 디 지안그레고리오는 "유연성(flexibility)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LCD 등의 슬림형 화면은 우리가 TV를 보는 장소 자체를 바꿀 것이다. 텔레비전이 더 얇아질수록 이동성도 증가한다. 샤프의 아쿠오스 텔레비전 중엔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것도 있다. 이방 저방 TV를 들고 다니며 보든, 벽에 걸어놓고 보든, 방바닥에 세워둔 채 보든 기분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작은 스크린에서만 가능한 일은 아니다. 20인치 TV도 고작 8kg 정도의 무게로 한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있다.

이런 일이 실현되려면 아직 몇가지 기술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아직까지 나온 평면TV들은 전원과 안테나 선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선이 하나도 딸리지 않은 TV가 나올 것이다. LCD 화면은 전력소모가 음극관 TV의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전기요금을 절약한다는 의미 외에도 배터리로도 TV를 볼 수 있음을 뜻한다. LCD TV는 조만간 노트북 컴퓨터처럼 작동하게 될 것이다. 비록 충전후 10시간 정도만 작동하겠지만.

나머지 남은 안테나 선은 중간기지국이 텔레비전에 무선 신호를 전달해줌으로 해결된다. 샤프사는 이미 '스마트 링크'라 불리는 장비를 일본 시장에 내놓았다. '스마트 링크'는 DVD 플레이어나 위성수신기로부터 30m 떨어진 곳까지 TV신호나 영상신호를 쏘아주는 장비로 아쿠오스 TV를 침실이나 부엌, 정원까지 가지고 다닐 수 있게 한다.

게다가 TV나 비디오를 보는 데 국한 될 필요가 있겠는가? 평면 텔레비전은 많은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통합(convergence)의 기쁨을 느끼게 할 것이다. 고해상도의 LCD 화면을 통해 최상의 웹페이지를 볼 수도 있고 비디오 게임을 즐길 수도 있다. LG는 PC 모니터로도 쓸 수 있는 15인치 LCD TV로 시장 공략에 나섰다. 올 11월에 필립스가 내놓을 LCD TV 역시 TV/컴퓨터 겸용으로 쓸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파나소닉은 일본에서 15인치 LCD 모니터에 TV 튜너, 웹 브라우징, DVD 플레이어, VCR, CD 플레이어 기능을 결합시킬 수 있는 TH-150TX1이란 장비를 팔고 있다. 샤프사의 아쿠오스는 컴퓨터 모니터로 작동하지는 않지만 최신 버전의 경우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TV로 볼 수 있도록 플레시 메모리 카드 슬롯을 포함시켰다.

인터넷 접속이나 TV 시청, 영화관람 등 여러 가지 일들을 번갈아 할 수 있는 평면 화면들이 집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미래의 집을 상상하긴 어렵지 않다. "기술적으론, 모든 일이 가능하다. 단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 위한 시도와 실패의 과정이 있을 뿐"이라고 필립스의 텔레비전 부분 아시아-태평양 마케팅 담당부서장인 르네 하트만은 말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가격이다. 평면 TV가 더 이상 부자들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TV에 비해서는 비싸다. 홍콩에서 팔리는 샤프사의 최신형 20인치 아쿠오스 모델은 2천5백40달러(약 3백30만원)나 한다. 이는 약 5백달러(약 65만원)에 팔리는 25인치 브라운관 TV에 비하면 상당히 비싼 가격이다. 기술이 발달하고 경쟁이 심화되면 가격은 앞으로 18개월 내에 현재가격의 3분의 1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다. 디스플레이서치사의 부회장 샘 마츠노는 수요공급의 접점이 2005년쯤 맞춰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때가 되면 올해 전세계에서 팔린 LCD TV 판매수 76만5천대는 7백만대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다.

마츠노는 가격과 더불어 LCD TV의 보편화를 앞당길 요소로 2가지를 더 꼽는다. 디지털 방송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다. 일반적인 가구들은 한 TV를 10년 이상 사용해왔지만 디지털 방송이 등장하면 (이는 결국 아날로그 방송의 중단으로 이어질 것이다) 사람들이 TV를 바꾸려 할 것이다.

사람들이 TV를 바꾸게 될 때 평면화면 기술은 완벽한 선택이 된다. 디지털 방송이 본격화될 시기는 베이징 올림픽의 개최시기와 맞물린다.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 주요한 스포츠 경기가 있을 때면 TV 판매가 급증했다"고 마츠노는 말한다. 일본에서 플라즈마 TV가 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과 맞물려 출시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LCD TV 역시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과 일본에서 큰 성장세가 예상된다.

이런 흥분 속에서 LCD 기술이 아직 개발중이란 사실을 잊기 쉽다. 신용카드를 꺼내기 전에 반드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점이다. 전문가들은 특정한 각도에서 밝기가 사라지는 방식의 화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들은 또한 빠른 화면 속의 움직임에 LCD 액정들이 얼마나 빠르게 반응하는지를 측정하는 반응률도 살펴봐야 한다고 경고한다. 만약 이 반응률이 너무 낮으면 화면 속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잡기 힘들 것이다. (이는 괜찮은 LCD TV에서 큰 문제는 아니다) LCD TV는 아직 브라운관 TV만큼 스포츠 경기에서의 동작을 잘 소화해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마츠노는 "지속적으로 꾸준히 나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한편에선 구형 브라운관 TV의 생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제조회사들은 꾸준히 품질을 높여 음극관 TV의 악명높은 깜박임 현상을 많이 제거했다. 밝기와 선명도는 모든 동작을 디지털화함으로써 개선됐다. 굽은 스크린을 평평하게 함으로써 화면반사도 줄였다. 브라운관 TV 역시 많이 얇아졌다. 미국의 제조회사들은 TV 브라운관의 두께를 2분의 1로 줄이길 바라고 있다. 한편 캐논, 도시바 등은 하나의 전자총이 화면위 하나의 픽셀만을 담당할 수 있도록 수십만개의 작은 전자총으로 구성된 얇은 화면을 개발하고 있다.

이후 어떤 기술이 나오더라도 일단 지금 얘기하는 것은 평면 TV에 관해서다. 평면 TV는 이제 더이상 부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오카모토 게이코와 같은 사람이 증명하듯 슬림형 평면 TV는 공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아시아의 많은 가정에서 사랑받을 것이다. 그리고 이 제품의 뒤를 이어 많은 벽걸이 TV가 줄줄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STUART WHITMORE (ASIA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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