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숨결' 담은 북한강변 야외 미술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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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5일 시작, 26일까지 대성리 화랑포 주변 수천여평의 벌판에서 열리는 이번 바깥미술회 정기전의 주제는 '넘치는 생명력, 삶의 물길'이다. "크고 작은 굴곡을 거치며 상류에서 내려오는 수많은 물의 갈래들이 결국 합쳐져 하나의 강을 이루는 과정이 생명의 끈질긴 힘으로 이뤄진 삶의 역사를 떠오르게 한다"는 명제를 다양한 경향의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구체화 시켜보자는 취지다.

1997년부터 환경.생태.자연 쪽으로 뚜렷하게 미술전의 방향을 선회해온 작업의 연장선상에 서있고 마침 올해는 유엔이 정한 '세계 물의 해'이기도 해 타이밍도 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이번 정기전에는 바깥미술회 회장 최운영과 최성열.김언경.정하응.하정수 등 회원작가 8명, 초대작가 31명 등 모두 39명이 참가했다. 작가마다 다른 개성만큼이나, 작품을 설치해야 하는 공간인 북한강변은 여러가지 모습으로 작가들에게 다가섰을 법하다.

사람 키보다 높이 자란 갈대숲이 우거지고 썩은 나무 덩굴들이 뒤죽박죽인 북한강변은 작가들이 작업을 하는데나 관람객들의 편의라는 기준에서 따져볼 때 결코 우호적인 공간이 아니다. 토종 갈대와 이름 모를 외래종 식물이 영역 다툼을 벌이고 있고, 강이 범람할 때 밀려온 쓰레기들은 곳곳에 더미를 이루고 있다.

열악한 전시 환경이 오히려 작가들의 오기를 불러 일으킨 것일까. 단점을 활용한 작가들의 기지가 허를 찌른다. 또 오염된 현실에 절망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자연의 자정능력에 대한 믿음이 깔린 작품들이 많다.

박봉기씨는 현실을 고발하는 쪽이다. 박씨는 강물에 밀려온 쓰레기 위에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가 보태져 만들어진 본격적인 쓰레기장 위에 나무로 엉성한 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나무다리 밑을 바라보면 쓰레기가 쌓여있고 고개를 들면 오염된 현실을 정화하는 생명의 물줄기 북한강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최운영씨 역시 쓰레기장 위에 작품을 설치했지만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최씨가 쓰레기장 위에 수십개 만들어놓은 30~40㎝ 높이의 작은 철망 언덕들은 새로운 형태의 생명을 상징한다. 최씨는 "하루 하루 자연환경에 대한 오염의 도가 심해지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싹트기를 기원하는 의미"라고 말했다.

뭍의 생명들이 합쳐져 갈대로 만들어진 거대한 물고기의 형태를 갖춘 작품을 내놓은 최성열씨 역시 환경 오염에 기가 꺾이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윤대라씨의 작품은 실소를 터뜨리게 한다. 무성하게 자란 외래종 갈대숲 사이 사이에 길을 내 마치 미로같은 갈대터널을 만들어 놓았다. 친절하게 군데군데 붙여진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면 막다른 갈대숲 골목이 나타난다.

전시회는 이미 시작됐지만 본격적인 볼거리는 이번 주말에 몰려있다. 18~19일에는 불교의 방생과 흡사한 '강에 나무 물고기 띄워보내기' 행사가 열린다. 관람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순서다. 작가들의 도움을 받아 직접 만든 나무 물고기에 올해의 소원을 적어 띄워보낸다. 18일 공식적인 개막식은 사물놀이패의 열림굿과 행위예술가 신용구씨의 퍼포먼스로 구성된다. 25일에는 작가들의 현장 토론회가 계획돼 있다. 북한강의 칼바람은 매섭지만 추위에 움추러들지 않고 작업실을 벗어나 '바깥'으로 뛰쳐나온 작가들의 열기로 대성리는 푸근하다. 016-242-1967.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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