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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시대 한국, 품위의 소프트 파워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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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에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여성 정치 지도자의 출현은 동북아시아 근·현대사에서도 최초의 일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과 정치 진출은 역사의 큰 흐름이다. 미국의 경우 2012년 선거를 통해 여성 상원의원 수가 20명이 됐다. 머지않아 미국에서도 여성 대통령이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미국을 앞섰다. 한국이 아시아·태평양에서 역사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시아 시대에 한국의 새 정권이 직면할 과제는 무엇일까.

 첫째, 글로벌화에 수반해 발생하는 소득격차의 확대, 그리고 그에 의한 중산계층의 붕괴를 막고 두꺼운 중산층을 되살리는 일이다. 한국은 글로벌화에 성공적으로 적응, 그 과실을 섭취해 왔다. 하지만 그만큼 반작용 또한 심하다. 이명박 정권 때 두드러지게 나타난 ‘재벌 때리기’는 그 결과일 것이다. 새로 출범할 정권은 격차 시정, 중산층 재건을 위해 새로운 보수주의-‘공감하는 보수주의(compassionate conservatism)’-를 지향하고 있는 듯 보인다. 부디 글로벌시대의 새롭고 바람직한 보수 모델을 제시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둘째, 저출산·고령화다. 한국은 인구가 5000만 명을 넘어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30년 감소 추세로 돌아선 뒤 이후 급격한 하향곡선을 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한국은 2009년 출생률이 1.15로, 일본(1.37)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가 됐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인 ‘고령화율’ 또한 2050년 38.2%로, 일본과 나란히 세계 유수의 고령국가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지금 한국과 일본이 서로 지혜를 모아 함께 인구위기에 맞서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는 민족주의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중국과 러시아·일본에 근접해 있다는 지정학적 중압감, 그리고 일본에 식민 지배를 받았고 전후 남북이 분단됐던 역사적 굴욕과 비애 속에서 발효되는 휘발성 강한 민족주의다. 이건 한국 국민의 생존 본능과 생명력을 강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한국 정치를 늘 ‘격정의 정치’로 만들었다. 한·중·일 모두 민족주의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과 일본 모두 자제가 필요하다. 북한에 대해선 강온 전략을 구사, 살살 달래며 껴안고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미·일 정책협조 체제를 되살려 상황에 맞는 강온 전략을 구사해야 할 것이다.

 일본도 한국도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안전보장 면에선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해야만 한다. 그 밸런싱 액트(balancing act·갈등 조정)를 조금이라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도 한·일 간 ‘보다 높은 차원’의 관계 형성이 요구된다.

 동북아에선 냉전 후 과거 역사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다. 그걸 지금 다시 한번 상기해야만 한다. 그중 가장 의미 있는 시도는 1998년 10월 8일의 ‘한·일 공동선언(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이었다. 당시 한·일 정상은 이렇게 강조했다.

 “65년 국교 정상화 이래 쌓아 온 양국 간의 긴밀한 우호협력 관계를 보다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켜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구축하자는 공통된 결의를 선언했다.” “오부치(小淵) 총리는 금세기의 한·일 양국관계를 회고하고, 과거 한 시기 식민 지배로 한국 국민에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겼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밝혔다.” “김대중 대통령은 오부치 총리의 역사 인식 표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평가함과 동시에 양국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뛰어넘어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상호 노력하는 것이 시대의 요청임을 표명했다.” “오부치 총리는 한국이 국민의 꾸준한 노력에 의해 비약적 발전과 민주화를 달성하고 번영,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한 것에 경의를 표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전후 일본이 평화헌법하에서 전수(<5C02>守)방위 및 비핵 3원칙를 비롯한 안전보장정책, 나아가 세계경제 및 개발도상국에 대한 경제지원 등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해 온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이 선언은 한·일 국교 정상화 다음으로 ‘보다 높은 차원’, 즉 한·일 화해의 길로 내딛는 첫걸음이었다. 당시 오부치 총리는 막역하게 지내는 자문진과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조찬 모임을 한 달에 한 번 열었다. 나도 그 참석자 중 한 명이었다. “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생겨난 ‘아세안+3 정상회담’의 연장선상에서 한·중·일 정상회담을 개최하면 어떨까”란 아이디어도 그 모임에서 나왔다.

 “그거 흥미로운 걸. 꼭 합시다.” 오부치 총리의 반응은 빨랐다. 하지만 일본이 그 이야기를 꺼내면 중국이 외면할지 몰랐다. 그래서 오부치 총리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은밀하게 의사를 타진했고 김 대통령이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에게 이야기를 건네 찬성의 뜻을 확인한 뒤 오부치 총리에게 전했다. 그건 김대중 외교의 성과였고 또한 한·일 간 신뢰관계의 결과물이었다. 한국과 일본이 거의 같은 시기에 새 리더를 맞이하게 됐다. 양 정상은 그 당시의 ‘한·일 파트너십 선언’을 발판으로 ‘다음 한 걸음’을 꼭 내대뎠으면 한다.

 난 박근혜 시대의 한국이 전 세계의 새로운 파워로 대두하는 것 아닌가 하는 예감을 갖고 있다. 집중력, 스피드, 도전정신, 향상심, 친근감 등 이제까지의 한국의 강점과는 좀 다른 파워를 한국이 전 세계에 투영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건 바로 ‘품위’라고 하는 소프트파워다. 박근혜 당선인을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무엇보다 강한 인상을 받은 건 그녀에게서 배어 나오는 기품이었다. 약간 수줍음을 띤 기품이라고나 할까. 그와 비슷한 모습을 난 사적으로 만났을 때의 김대중씨에게도 느꼈던 적이 있다.

◇ 후나바시 요이치=베이징 출생. 도쿄대 교양학부 졸업 후 아사히신문사 입사. 하버드대 니먼 펠로, 아사히신문 베이징·워싱턴 특파원과 미국 총국장, 미국국제경제연구소(IIE) 객원연구원, 아사히신문 주필 등을 거쳐 현재 일본재건 이니셔티브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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