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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짓수에 입이 떡~깊은 맛에 반하는진짜 남도 한정식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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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호 22면

기본 상차림에 홍어회를 추가했다. 가짓수가 많지만 어느 것 하나 맛보지 않으면 섭섭할 정도의 음식들이다.

예부터 전라도는 자타가 공인하는 맛의 고장이다. 들이 넓어 곡식이 많이 나고 바다로 둘러싸인 곳이 많아 갖가지 해산물이 철마다 풍성하다. 음식이 절로 발달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다가, 그 덕에 입맛이 까다로워진 사람들 때문에 맛이 발전을 거듭해 온 곳이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에 보면 “‘삥아리 눈물’ 같이 작은 민물새우 알을 따서 애첩이 저붐 끝으로 살짝만 찍어 묵어도 따구럴 올려붙일” 정도로 아껴 먹는다는 토하알젓까지 담가 먹는 지주들도 있을 정도였다.
이런 전라도 음식도 이제는 옛날 같지 않다. 아무 데나 들어가도 맛있고, 막걸리 한 병만 시켜도 기본 안주로 배가 부르던 전설은 간데없고 무늬만 전라도 맛집 흉내를 내고 있는 곳이 많다.
심해져 가는 생존 경쟁으로 각박해져 가는 세상 탓이니 누구를 탓할 것은 없지만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맛있고, 풍성하고, 정성스러운 전라도 음식의 세 박자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 아직까지 몇몇 남아 있어 위안이 된다. 전라남도 순천에 있는 한정식집, 대원식당이 그중에 대표적인 곳이다.
대원식당은 1966년에 문을 열었으니 벌써 46년이나 됐다. 돌아가신 이종귀 여사가 시작했다. 못 배운 것이 한이 돼서 자식들만은 원 없이 공부시켜주고 싶었는데 철도 공무원이었던 남편의 박봉으로는 어림없던 일이라 본인이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식당 일로 고생하시면서 1남4녀를 모두 다 대학까지 마치게 하고 돌아가셨다. 둘째 딸 이혜숙(61)씨가 물려받았다가 중간에 셋째 딸 이인숙(58)씨도 합류해서 옛날 그 자리에서 어머니께서 하시던 모습 그대로 전통을 지키면서 자매가 함께 운영해 오고 있다.
전라도 한정식은 원래 한 상 떡 벌어지게 차려 내어오는 것이다. 코스 식으로 감질나게 내어오는 요즘의 국적 불명 한정식과는 차원이 다르다. 대원식당은 옛날식 그대로 주방에서 상을 차려서 손님방으로 들고 들어온다. ‘상다리가 휘어지는’ 상을 ‘이모’들이 낑낑대면서 들고 들어오면 시작부터 황송해진다.
전라도 식당들은 내오는 음식 가짓수가 많기로 유명하지만 그러면서도 맛이 있는 곳은 생각보다 많지가 않다. 대원식당은 이 두 가지를 모두 다 만족시켜 주는 곳이다. 1인분에 점심 2만원, 저녁 2만5000원짜리 기본 상에 나오는 가짓수만 무려 25가지가 넘는데, 음식들이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고르게 맛이 깊다. 간장, 고추장, 된장 같은 장류는 물론이고 젓갈들도 모두 다 직접 만들어서 사용하는 것이 깊은 맛을 내는 일차적인 비결이다. 모든 밑반찬도 당연히 직접 만든다.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9> 순천 대원식당

위 대원식당 현관. 46년 전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아래, 손님이 방에 자리를 잡으면 주방에서 상을 차려서 ‘이모’들이 들고 들어온다.

손님 대접 소홀해질라 가게 안 늘려
편하게 앉아 식재료들을 납품받는 것이 아니라 자매가 매일 도매시장에 나가 좋은 재료들을 골라 사온다. 어머니 때부터 연구하고 개발해 온 음식들을 기본으로 하면서 영양사인 동생이 새롭게 만드는 계절 음식들을 철철이 바꿔 손님 상에 올린다.
기본 차림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지만 추가로 주문할 수 있는 맛있는 요리들도 많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홍어찜에 따라 나오는 홍어애탕이다. 얼큰하면서도 이렇게 풍부한 맛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놀라운 맛이 수저를 쉴 틈이 없게 한다. 다른 맛있는 음식들 때문에 배가 이미 찼어도 홍어애탕에 밥 한 그릇은 꼭 비벼 먹어야 할 만큼 치명적인 유혹이다.
대원식당의 또 다른 명물은 이혜숙, 이인숙 두 분 사장님들이다. 음식 상이 들어가면 직접 상머리에 앉아 음식도 하나씩 설명해주고 맛있게 먹는 방법도 구수하게 알려 주는데, 그 모습이 참 살가워서 정감이 있다. 공간을 더 늘리면 이렇게 하는 손님 대접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옛날 그대로 방 6개짜리 작은 규모를 고집하고 있단다. 열정만큼 자부심도 대단해서 누구 앞에서나 당당한 모습이다. 얼마 전에 중앙의 최고위급 인사가 온다고 급하게 연락이 왔는데 이미 예약이 다 차 있었다. 일정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예약을 바꿔달라고 고압적으로 부탁했지만 “우리 집은 누구에게나 선착순”이라고 단박에 거절했다고 한다. 브라보!
이렇게 멋진 곳을 나는 사랑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 간다고 해도 이 집은 변함없이 우리 곁에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맛있고, 풍성하고, 정성스러운 그 모습 그대로 언제나 정감 있고 당당하게.

대원식당 전남 순천시 장천동 35-11 전화: 061-744-3582 (*예약을 반드시 해야 헛걸음을 안 한다. 만인지상도 소용없다)


음식사진여행을 진지하게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음식이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마케팅·리서치 전문가. 경영학 박사 @yeongs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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