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실익 없는 택시법 처리, 정치권 책임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김한별 사회부문 기자

“‘택시법’ 상정이 코앞인데 굳이 특별법을 수용할 이유가 뭔가.”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홍명호 전무는 30일 이렇게 말했다. 전날 박복규 택시연합회 회장과 함께 임종룡 총리실장, 윤학배 국토해양부 종합교통정책실장 등을 만난 자리에서 택시를 대중교통 수단으로 인정하는 법안(일명 택시법) 대신에 택시산업활성화특별법(가칭)을 제안 받은 데 대한 질문을 받고서다.

 홍 전무 말대로 ‘택시법’은 국회 상정·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다. 정치권은 “정부가 택시업계를 설득하지 못하면 2013년 예산안과 함께 본회의에서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해 왔다. 28일 여야가 예산안에 잠정합의하고 31일 본회의를 열기로 한 만큼 이날 택시법이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택시법이 통과되면 한 달 넘게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군 택시법 논란도 일단락된다. 한때 전면 운행중단에 나서겠다고 반발했던 버스업계도 최근 계획을 철회한 만큼 당장 문제될 일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난 게 전부일까. 전문가들은 “진짜 문제는 법 통과 이후부터”라고 말한다. 국토해양부는 택시가 대중교통으로 지정되면 국가·지자체의 재정부담이 연간 1조원 이상 증가할 것으로 우려했다. 거기다 새누리당은 버스업계를 달래는 과정에서 유류세 100% 면제, 민자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등을 약속했다. 이 약속을 지키자면 연간 수천억원의 예산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정치권의 ‘선심’에 2조원 가까운 국민세금을 퍼주게 생긴 국토부는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며 선을 긋고 나섰다. 김용석 대중교통과장은 30일 “택시법이 통과되면 과잉공급 해소, 요금 현실화를 제외한 다른 지원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택시업계에 대한 추가 재정지원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기존에 내놓은 중장기 대책들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택시법이 통과된다고 한들 당장 업계에 돌아갈 실익이 별로 없다. 정부·전문가들이 반대하고 국민이 우려하는 법안을 강행 처리해 얻는 것 치고는 허무한 결론이다.

 그러나 택시업계는 국토부의 ‘원점 재검토’ 압박에도 “새누리당의 약속을 믿는다”는 입장이다. 택시연합회 홍 전무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 새 사람이 새 정책을 펼 것 아니냐”고도 했다. 한국교통연구원 성낙문 박사는 “‘문제가 있어도 약속을 했으니 지켜야 한다’는 정치권 논리가 낳은 후유증이 만만찮다”며 “정치적 약속이 정책 전문성보다 중요한가”라고 되물었다. 정치권은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 질문에 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은 정치권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