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대학생 칼럼

나를 의심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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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정규
동국대 사회학과 4학년

취업준비생은 제2의 사춘기를 겪는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항상 시달린다. 자기소개서(자소서)와 면접 때문이다. 특히 서류에서 떨어지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자소서에 담긴 내 인생이 거절당했다고 느낀다. 탈락이 계속되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내가 정말 재능이 있기나 할까’라는 의심으로 바뀐다. 그렇게 20대는 상처받는다.

 자기부정을 다독일 힐링이 필요하다. 작가이자 교수인 박범신은 상처받는 20대를 걱정하며 ‘요즘 힐링이 대세라는데’라는 칼럼을 썼다. 그는 “요즘 20대는 문학에의 정체성에 옹골진 확신이 없으므로 많이 해 보지도 않고 자신의 재능부터 먼저 의심한다”고 말했다.

 공감했다. 나 자신도 타인으로부터 재능을 확인하려 했다. 누군가 재능을 인정해 주면 뛸 듯이 기뻤다가도,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를 부정했다. 취업전선에 뛰어든 20대는 끊임없이 평가받으며 힘들어한다. 조금만 실패하면 좌절한다. 자꾸만 자신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20대는 유달리 더 아프다.

 연이은 탈락에 나 또한 아팠다. 힐링 받고자 애썼다. 상담도 받고 책도 읽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천천히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이 먼저였다. 탈락했던 자소서를 고치고 또 고쳤다. 나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법을 배워 갔다. 왜 그 직업을 소망하는지, 그 직업이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살아온 삶을 돌아보자 자기 이유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싶다는 이유로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고 있다. 내 글이 널리 전달되고 그 반응을 듣고 싶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난 말이 많았다. 사회학을 어쭙잖게 배우고 나서는 말이 더 많아졌다. 계급이니, 노동이니, 구별 짓기니 하는 어려운 개념을 써 가며 소통하려 했다.

 그런 내 언어가 삶을 살아내는 이와 마주쳤다. 추운 겨울 바다였다. 해경 전경으로 경비정을 타며 복무하던 중 어부를 만났다. 처음에는 노동이라는 나의 문제의식으로 말을 걸고자 했다. 하지만 현실은 숨 가빴다. 고민할 틈 없이 ‘홋줄’로 배와 배 사이를 단단하게 잡아야 했다. 따뜻한 인스턴트커피와 함께 “춥진 않으세요”라는 말을 건넸다. ‘그들의 언어’로 다가갔던 순간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기자란 나의 언어가 아닌 그들의 언어로 다가가는 이로 정의하게 됐다. 그들의 언어로 다가가 삶을 담아낼 때 행복하다.

 이렇게 자기 이유를 찾아가고 있다. 힐링하는 과정이다. 신영복 교수의 얘기처럼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로 걸어가면 자유(自由)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기자가 되려는 자기 이유를 만들어 가니 취업 준비기간을 인내할 수 있었다. 불안과 의심의 짐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졌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 이유를 품고 뚜벅뚜벅 걸어갈 우리 청춘들을 소망하게 됐다.

이 정 규 동국대 사회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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