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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의 치고 빠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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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본의 아베 내각 출범 이틀째인 27일 아베 신조 총리가 도쿄 중의원(하원) 본회의장에서 열린 전체회의 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도쿄 AP=연합뉴스]

26일 취임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공약의 ‘취사선택’에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한국 등 주변국과의 마찰 등 파문이 클 것은 미루거나 거둬들이지만 소신을 굽히기 어려운 것들은 거침없이 밀어붙일 태세다. 코앞에 닥친 외교 일정과 내년 7월의 참의원 선거를 앞둔 내정을 두루 의식한 양동작전이다.

 먼저 아베 정권은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가 1995년 종전 50주년을 맞아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명확히 밝혔다. 일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26일 심야 기자회견에서 “2006년의 제1차 아베 내각 당시도 ‘지금까지의 (일 정부) 입장을 이어가겠다’는 생각을 표명한 바 있다”며 “이번에도 역대 내각의 생각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무라야마 담화는 집권당이 어디든 태평양전쟁에 대한 일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계승돼 왔다. 아베는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 무라야마 담화에 이의를 제기한 바 있지만 총리 취임 후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추상적 사과인 데다 배상 등 구체적 쟁점이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을 인정한 고노(河野) 담화에 대해선 다소 애매한 입장을 보였다. 스가 장관은 27일 오전 “고노 담화의 수정 문제를 정치·외교 문제로 삼아선 안 된다”고 전제한 뒤 “역사학자·전문가들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그런(고노 담화의 수정) 검토를 계속해 나가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총선 전 여러 차례 언급한 것처럼 고노 담화를 수정하겠다는 것인지 아닌지 모호하게 흘린 것이다.

 먼저 한국 등을 향해선 “외교 문제로 만들어선 안 된다”는 표현으로 유화 제스처를 보였다. 그러곤 국내를 향한 메시지로서 “이 문제는 2007년 아베 내각에서 각의 결정된 경위가 있다”고 내비쳤다. 아베는 총리 재임 중이던 2007년 4월 각의 결정을 통해 “(일본) 정부가 발견한 자료에는 (일본)군이나 관헌(관청)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을 직접 나타내는 듯한 기술은 발견할 수 없었다”며 사실상 93년의 고노 담화를 부인한 바 있다.

 아베 입장에선 한국 정부가 요구하는 위안부 문제의 국가적 책임 인정, 국가 차원의 배상 문제의 중심에 고노 담화가 자리잡고 있는 만큼 섣불리 가타부타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 듯하다.

 아베 정권의 ‘헷갈리기 전술’에 일 언론도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이날 “한국·중국과의 외교관계 추이를 지켜보면서 (고노 담화 수정을 위한) 연구자들 논의는 당분간 유보할 생각을 내비친 것”이라고 해석한 반면, 교도(共同)통신은 “담화 수정에 나설 수 있다는 것으로, 움직임이 구체화되면 한국 등의 맹렬한 반발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아베는 공약으로 내세웠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해선 본격 검토에 들어가겠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취임 회견에서 “1차 아베 내각 당시 설치했던 전문가 간담회가 제시한 ‘집단적 자위권의 네 가지 유형’이 바람직한 것인지 한 번 더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집단적 자위권이란 동맹국이 타국으로부터 공격받을 때 자국이 공격받은 것으로 간주해 반격할 수 있는 권리다. 역대 정권은 평화헌법 9조에 어긋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인 반면 아베는 헌법을 바꾸지 않고도 헌법 해석을 바꾸면 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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