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매니어 고객’ 불황기 백화점 효자로 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6면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있는 생활용품 편집매장 ‘피숀’에서 한 여성 고객이 해외 서적을 살펴보고 있다. 미국·유럽 등에서 수입한 50여 종의 원서는 한 달 평균 600여만원어치가 팔려나간다. [사진 신세계백화점]

주부 양경희(36·서울 목동)씨는 최근 한 백화점 생활용품 편집매장을 찾아 미국에서 수입된 8만원짜리 인테리어 컬러 원서를 샀다. 양씨는 “고가이긴 하지만 거실에 놓으면 장식 효과가 있고, 또 두고두고 볼 수 있어 큰마음먹고 구입했다”고 말했다. 양씨는 이런 특수 서적을 많이 찾는 ‘매니어 고객’이다.

 소비 침체 속에 매니어 고객이 백화점에 효자로 등장했다. 전반적인 소비가 얼어붙은 속에서도 소수 매니어가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사는 ‘매니어 제품’ 매출은 늘고 있다. 그간 매니어 상품은 구하기가 어렵고, 찾는 물량이 많지 않아 인터넷쇼핑몰이나 전문 매장에서만 파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백화점들이 적극적으로 시장 개척에 나서면서 백화점 판매가 늘고 있는 것.

 대표적인 게 고가 해외 서적이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있는 생활용품 편집매장 ‘피숀’에서는 미국·유럽·싱가포르 등에서 수입한 50여 종의 아트북을 판매 중이다. 권당 가격이 5만~10만원에 달하지만 패션·건축·요리·디자인 등의 서적이 한 달 평균 600만원어치 팔린다. 취급 품목 수가 늘면서 지난달까지의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배 늘었다. 신세계 강남점에 있는 남성 캐주얼 편집매장 ‘맨온더분’에서도 카메라·자동차 등을 다룬 고가 컬러 원서 30여 종을 파는데 책 매출 비중이 전체의 15%에 달한다.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 8층에 있는 헤드폰·이어폰 편집매장인 ‘닥터 사운드’는 오디오 매니어를 노린 매장이다. 음향에 민감한 이들을 잡기 위해 제품을 끼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체험 공간을 10곳 마련했다. 독일의 ‘젠하이저’, 오스트리아의 ‘AKG’, 일본의 ‘오디오테크니카’, 미국의 ‘슈어’ 등 일반인에겐 생소하지만 매니어가 좋아하는 해외 30개 브랜드 150여 제품을 갖췄다. 팔리는 제품 중 최고가는 독일 젠하이어의 HD800으로 185만원이다. 이 매장에서 팔리는 헤드폰은 하루 평균 20개 이상이다.

 현대백화점은 나이키에서 제작하는 한정판 농구화를 노리는 매니어 계층을 위해 올 3월 ‘농구화 전문숍’ 자격까지 따냈다. 이 자격이 있어야 가끔 출시되는 한정판 ‘에어조던’ 나이키 농구화를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키 농구화 전문숍은 백화점으론 최초고, 백화점을 빼면 전국에 8곳이 있다. 현대백화점 민병도 나이키 브랜드 매니저는 “에어조던 농구화는 한정판이 나오면 출시 당일 지방에서 올라오는 고객들이 줄을 서 완판된다”며 “앞으로도 한정판 시리즈의 상품 물량을 최대한 확보해 고객에게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식자재는 매니어층이 넓어진 또 다른 품목이다. 집에서 서양 음식을 만들어 먹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 9월부터 강남점과 경기점에 다양한 올리브 절임과 앤초비(이탈리아식 멸치절임) 등을 파는 전문매장 ‘리 델리찌에’를 열었다. 이 매장은 한 달 평균 5000만원의 매출을 올린다. 가공식품 매장 중 매출 5위다. 양고기에 곁들여 먹는 ‘민트젤리’ 소스나 빵이나 파스타를 만들 때 넣는 오징어 먹물 등도 하루 20여 개 이상 꾸준히 팔린다. 이에 따라 이 백화점은 내년 봄 앤초비와 송로버섯 소스 등 매니어 식재료 종류를 올해보다 두 배 늘릴 예정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