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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말 산 것 같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남태평양 「사모아」부근에서 삼치 잡이 어선 「아튜에」호가 조난되어 표류 74시간만에 기적으로 살아난 제동산업소속 갑판장 최응철(30·부산시 영도구 영선동4가66)씨와 갑판원 이학진(33·경남 거제군 하청면 덕곡리)씨가 4일 낮12시30분 꿈에도 잊지 못할 고국의 땅을 힘차게 밟았다.
예정시간보다 20분 늦게 NWA기 편으로 김포공항에 내린 이들은 검붉게 탄 얼굴이었지만 약간 여윈 얼굴로 NWA에서 내어준 조그마한 「백」하나씩을 들고 「트랩」을 내려왔다. 갑판장 최씨는 「올백·스타일」머리에 검은 「코트」검정색 양복으로 말끔히 갈아입고 있었고 갑판원 이씨는 검정색 「잠바」속에 붉은 남방 「셔츠」와 푸른 바지를 입고있었다.
20분 동안이나 공항송영 대에서 이들의 귀환을 초조히 기다리던 최씨의 누나 최복녀(42·전남 목포시 만호동)씨와 동생 민중(27·전남 무안군 흑산읍 병안리)씨는 준비해 갖고 나온 꽃다발을 치켜올리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조난 당한 「아튜에」호에 함께 탔다가 순직한 선원들의 유족들도 그들의 아들과 동생·남편을 대하는 듯 만세를 부르며 기쁘게 맞이했으나 유족들의 눈에는 한줄기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들이 세관검역을 받기 위해 세관사무소로 들어서자 마중 나온 제동산업 측에서는 화환두개를 최씨와 이씨의 목에 각각 걸어주고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환영인파 속에 묻혀 흙 냄새를 맡아 본 이들은 『이제야 살아있다』는 감정을 느낀다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죽을 줄만 알았던 74시간의 표류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기쁘지만 함께 조난 당했다가 순직한 20여명의 동료를 생각할 때 혼자 살아 돌아온 것이 미안하게까지 생각된다』고 더듬더듬 말했다. 최씨는 왼쪽무릎을 상어에 두번이나 물렸다면서 완쾌되지 않은 다리를 절면서 누나 최복녀씨와 동생 민중 씨의 품에 안겼다.
약15분 동안 세관당국의 휴대품검사를 받고 나온 이들은 유족들에 둘러싸여 조난당시의 상황을 목멘 소리로 띄엄띄엄 설명했다.
「아튜에」호의 통신장으로 있다고 행방불명이 된 정옥용(29)씨의 아내 윤상녀(29)씨는 3형제를 거느리고 서울 구로동 공영주택에 살고있는데 최씨와 이씨의 설명을 듣다가 남편 정씨가 사망한 것이 거의 확실해지자 졸도까지 했다.
이들이 귀환하는 이날 김포공항의 송영대에는 생환을 기쁘게 맞는 최씨의 가족과 혹시나 희망적인 소식을 들을까해서 마중 나온 유족들의 그늘진 얼굴로 희비의 쌍곡선을 이뤘다.
「아튜에」호에 탔다가 순직한 기관장 문희근(31·경기도 부천군 오정면 오정리87)씨의 어머니 장무연(59)씨는 외며느리 김기선(28)씨와 병언(5) 병철(3) 두 손자를 데리고 나와 아들의 소식을 목타게 기다렸다.
지난 1월30일 「아튜에」호가 조난 당한 후 구조차 나갔던 남해호 선원으로 순직한 배학길(27·서울 마포구 아현동609)씨의 누나 배정자(39)씨와 형 학수(32)씨는 죽은 동생의 영정을 들고 나와 생환한 이들에게 보이면서 『정말 우리 학길이가 죽은 현장을 목격했느냐』고 목메어 묻고있었다.
이들은 공항 기자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조난 당했던 당시의 상황을 간단히 말하고 제동산업소속 「지프」에 타고 제동산업회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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