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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명의 「먼 남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헝가리」「폴란드」 「유고슬라비아」 등 공산국가의 사람들에게도 미국구경을 시켜주는 미국의 국무성초청 여행기간 중 개별여행 「스케줄」에 따라「디프·사우드」라고 불리는 남부를 가보았다.
「멕시코」만의 동북부해안을 중심으로 두꺼운 반달을 그리는 「디프·사이드」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한 곳으로 악명 높은 곳이다.
「디프·사우드」 중에서도 가장 지독하게 흑인을 차별한다고 알려진 「미시시피」주의 작은 도시를 택했다.
「그린빌」이라는 인구5만의 이 도시에는 「큐·클럭스·클랜」 2백50명 가량이 있다고 한다. 이 숫자는 경찰에 알려진 숫자이고 그밖에도 그들의 동조자 또는 극비가맹자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적어도 교육을 받은 백인들은 「클럭스」들을 욕하고 흑·백통합을 사회적 당위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민권법을 통한 흑백차별 철폐방법에도 비판적 태도를 감추지 않았다. 3주일 예정으로 「그린빌」에 도착하던 순간 제일먼저 눈을 끈 것은 흑백으로 구별되어 있는 「버스」정거장 대합실이었다.
백인의 대합실은 출입구가 건물정면에 있고 흑인대합실의 출입구는 모퉁이를 돌아서 건물측면에 있었다. 두 대합실은 벽으로 막혀 서로 볼 수 없게 되어있었다.
「버스」안에서는 흑·백인이 어느 정도 섞여 앉아 있었다. 이것을 보고 민권법의 위력이 작용하고 있는 가고 짐작했었으나 대합실을 보고 나니 문제가 달라졌다.
「택시」도 흑인용과 백인용이 나누어져 있었다. 민권법에 의해서 없어야할 구분이지만 지방민가운데 이 문제를 소송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 했다.
백인의 식당에 들어오는 용감한 흑인은 지방민이 아닌 여행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 그곳사람들의 말이었다.
도착하던 이틀만에 「큐·클럭스·클랜」들이 풍파를 일으켰다.
1주일 전에 죽어 땅에 묻힌 「존·터너」라는 형세의 흑인의 무덤에 수많은 무기가 감추어져 있다고 낭설을 퍼뜨린 「큐·클럭스·클랜」들은 경찰에 이것을 파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흑인들이 이 무기로 작년8월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어났던 것과 같은 폭동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고 내세웠다. 법원의 분묘발굴허가가 늦어 밤 열두시에 무덤을 팠다. 이것을 취재하러 가는 기자들은 권총을 품고 갔다. 이 기회에 「쿨럭스」들이 흑인과 경찰에 총격을 가해온다는 정보가 들어왔기 때문이라 했다.
결국 무덤 속에는 무기가 없었지만 「클럭스」들은 며칠 뒤 다시 그 무덤 속의 관을 열어보자고 떠들었다. 이래서 「존·터너」라는 흑인은 죽은지 열흘 남짓하여 「미시시피」의 햇빛을 다시 보게 되었다.
「디프·사우드」중에서도 「미시시피」는 미국사람들이라도 북부에 사는 백인들조차 가기를 주저하는 곳이다. 농사중심 봉쇄사회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미시시피」에 북쪽으로부터 민권운동자들이 밀어닥치기 시작한 후부터 타지방번호표를 달고 가는 차량들은 악의에 찬 경계의 눈초리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흑·백 문제 이야기를 하지 않는 한 「그린빌」사람들은 인심 좋은 시골사람의 특징을 대개 갖고 있었다.
그들의 주장은 흑·백 문제는 남부의 사회를 이해하고 흑인들의 경제적 현실을 파악한 후 서서히 사회개혁부터 단행한 후 해결할 것이지 민권법으로써는 흑·백 차별을 없앨 수 없다는 것이다.
3주일동안 「그린빌」에 있는 사이에도 몇 가지 변화가 눈에 띄었다. 「그린빌」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의 음악회입장이 허용되었다. 그리고 이웃도시에서 흑인여자를 강간한 백인청년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것도 그곳 역사상 처음이라 했다.
과거에는 문제화하기조차 않았던 문제에 이와 같은 판결이 난 것은 「디프·사우드」도 흑·백 통합이라는 사회적 당위를 향해서 소걸음이나마 나아가고 있다는 걸 말한다. 그러나 이상으로 향한 길은 그곳에서도 멀고 먼길일 것 같았다. <임상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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