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문재인의 자성에서 진보의 희망을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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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한국의 진보가 서 있는 인프라는 척박하다. 남북 분단 상황과 뿌리 깊은 안정·성장 이데올로기에 인구 고령화까지 겹치며 보수 프리미엄이 강고해져 온 게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진보 진영도 대선에서 패배할 때마다 그 원인을 내부보다 외부의 환경에서 찾는 모습을 되풀이해왔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그제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밝힌 자성의 메시지는 신선하게 다가온다. 문 후보는 자신의 낙선에 대해 “많이 이야기되는 친노(親 노무현)의 한계일 수도 있고, 또는 민주당의 한계일 수도 있고, 우리 진영의 논리에 갇혀 중간층의 지지를 더 받아내고 확장해 나가는 데 부족함이 있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부분들을 제대로 성찰해 내고, 해결해 나간다면 이번 선거의 패배야말로 오히려 새로운 희망의 출발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유권자 48%의 지지를 얻은 후보가 선거 결과에 대한 반성을 했다는 것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본다. 특히 추상적인 머리의 언어가 아니라 구체적인 가슴의 언어로 패인을 짚었다는 점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그간 민주당을 포함한 진보진영이 보수의 실패에서 영역을 확장해온 건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공격하면서 ‘정권교체’ 필요성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정작 진보가 이끄는 세상은 뭐가 어떻게 다른지를 차별화해 보여주지 못했다. 이제 진보는 친노와 민주당, 진영논리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실현 가능한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진보에게 핸들을 맡겨도 된다는 신뢰를 심어야 한다. 경제민주화·복지확대 공약이 왜 과반수의 유권자에게 설렘과 울림을 주는 데 실패했는지 그 이유를 따지고 대안을 마련할 때다. 그러기 위해선 실력을 키우고 인재풀(pool)의 외연을 넓혀나갈 필요가 있다.

 사회는 보수와 진보의 두 바퀴로 나아간다. 진보의 분발과 보수의 쇄신이 서로를 자극할 때만 새 정치도 가능한 것이다. 대선 결과에 대한 반성의 경쟁이 정치 생산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