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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인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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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신용호
정치부문 차장

세상을 다 가졌습니다. 적어도 오늘은 말입니다. 주변 모두가 고개를 숙이겠지요. 당선을 축하하면서요. 기자들끼리 하는 말이 있습니다. 대선 후보는 당선인이 되는 순간 그냥 사라지는 거라고요. 매일 유세 현장에서 취재할 수 있었던 그가 당선인이 되면 사라집니다. 최정예 경호원에게 둘러싸여 근접조차 금지되죠. 어제 현장에 나가는 후배에게 농담 삼아 그랬지요. “앞으론 못 볼지 모르니, 잘 봐둬라”고요. 최고 권력자, 대통령은 그런 자리입니다.

 인의 장막에 둘러싸일 겁니다. 당선인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소수가 되겠지요. 흔히 말하는 실세들입니다. 모두 그들의 입만 바라볼 겁니다. 물론 인터넷도 있고, 전화도 있어 소통이 가능하다 하겠지요. 하지만 그건 제한적입니다. 그리 지내다 보면 자연스레 눈이 가리고 귀가 막히기 십상입니다. 아실 겁니다. 권력은 당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잠시 임대받은 거지요. 허무하고 짧습니다. 그런데도 권력을 잡으면 그걸 깜빡 잊는 것 같습니다. 권력은 종착지가 아닙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죠. 좋은 대통령이 되라고 국민이 잠시 빌려준 거니까요. 하지만 수단을 마치 모든 것인 양 여깁니다. 특히 주변이 그럴 겁니다.

 좋은 대통령이 되고 싶으시죠. 무엇보다 인사입니다. 인사는 대통령이 국민과 어떻게 소통하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메시지입니다. 다들 공약으로 탕평인사를 약속했지요. 꼭 그렇게 하십시오. 국민들도 눈여겨볼 겁니다. 아는 사람이라고, 편하다고 그대로 쓰면 안 됩니다. 이 대목을 조금이라도 소홀해선 안 됩니다. 꼭 필요한 자리에 몇만 놓고 인재풀을 넓게 보세요. 상대방 인사면 어떻습니까. 이명박 정부가 ‘고소영’ 인사로 휘청거렸던 게 불과 얼마 전입니다. 잣대는 대통령 인수위원회 구성부터 적용될 겁니다.

 포용하십시오. 선거를 지켜보며 가장 마음 아픈 대목이 편가르기였습니다. 갈라치기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무리 ‘올 오어 낫싱’ 게임이라지만 도를 넘었습니다. 네거티브의 상처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요. 당선인이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고소·고발의 생채기들을 다 보듬어야 합니다. 당한 게 괘씸하고 분하다고 마음을 열지 않으면 그게 또 다른 갈등과 더 큰 상처를 낳습니다. 지지하지 않았던 이들에겐 더욱 고개 숙이고 친절해야 합니다. 국민 절반이 패자라는 느낌을 갖게 해선 안 됩니다.

 개헌도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대통령 권력이 너무 세다 보니 서로 차지하겠다고 싸우고, 이기더라도 주변엔 눈치만 보는 사람들이 늘어 소통을 막습니다. ‘1987 헌법 체제’도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25년간의 정치·사회 변화를 반영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꼭 수술을 해야 합니다. 번번이 개헌론이 나오긴 했어도 불발탄에 그쳤습니다. 당선인이 해야 합니다.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만큼 임기 초부터 추진하기 바랍니다. 부디 당선의 기쁨과 영광을 오래 가져가길 바랍니다. 우리도 퇴임 때까지 존경받는 지도자가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