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토 위에 핀 꽃|혼혈아에 꿈을- 펄·벅 재단|한국담당자「앤더슨」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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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 그것의 호부호는 일단 잊어버리고 한국전의 초토 위에 피어난 꽃을 구제해야됩니다』자신이 혼혈아이기 때문에 전쟁이 낳은 한·미간의 혼혈아들의 참상을 가슴으로 느끼고, 그래서 의무의 한계를 넘어 이들의 고통을 보살펴주고, 밝은 장래를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펄·벅」재단의 한국담당자「도널드·앤더슨」씨는 이들을 꽃에 비유했다.
지난번「펄·벅]여사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여사는 길에서 구걸하는 다섯살난 거지의 눈 빛깔이 자기의 눈 빛깔과 같은 것을 보고 묘한 감회를 느꼈다. 여사는 그 어린 거지를 불러 말을 걸어보려 했지만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며 그 거지는 도망을 쳤다. 따라가 보니 그는 언덕아래 뚫린 조그만 굴속으로 들어갔다.
이 어린 혼혈아는 조롱과 천시의 눈초리를 피해 인간이 없는 굴속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죄의식 속에서 나날을 보내왔던 것이다. 그 어린 거지는 「펄·벅」여사의 온정으로 미국 어느 가족의 일원이 되어 새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대개의 경우 어머니가 무식하거나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에 이 혼혈아들이 호적에 입적되지 않고 있어 그 정확한 수를 알 수 없으나 현재「펄·벅」재단에서는 5백명을 가려내어 실험적으로 구제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 눈을 보세요. 생기가 없습니다. 이 어린 나이에』기록 「카드」에 붙은 혼혈아들의 사진을 보이면서「엔더슨」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요즘 와서 한국인들 스스로가 이 혼혈아들에 대해서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면서 그는 방구석에 쌓인 각 제약회사에서 보내온「비타민」과 안약 상자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혼혈아 문제는 그들의 어머니가 매음을 생활의 수단으로 하는 한 계속되는 것입니다』기록「카드」를 덮으면서 그는 일어났다. 그래서「펄·벅」재단에서는 혼혈아와 그들의 어머니에게 생업을 주기 위해 생산공장을 세울 계획을 진행 중인데 금년 5월중「펄·벅」여사를 위시한 대표단이 내한, 구체적인 조사를 하게 된다고 밝은 전망을 보여주었다.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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