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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님거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대이골 종유굴의 학술조사단이 공전의 수확을 거두었다는 기사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솔로몬 동굴을 찾는 탐험소설의 한 페이지처럼 신비하고 기괴하며 드릴 있는 이야기다. 태고 때부터 햇빛이라고는 종유굴의 암흑세계, 그러나 거기에도 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었다. 계절도 없었다. 인간의 발자취도, 문명의 바람도 불지 않았다. 태고 그대로의 환경에서 머무른 소외지대 안에서 거미와 새우와 딱정벌레들이 살아 온 것이다.
조사단이 채집한 그 생물들은 대부분이 세계최초의 신종이며 신속이 될 것이라고 했다. 외계와 단절된 천연굴은 자연의 박물관처럼 신기한 생물들을 보존해 왔기 때문이다. 이래서 앞으로는 생물교과서까지 수정하지 않으면 안되게끔 되었다. 종유굴에서 사는 새우들이나 그 거미들은 모무 장님들이었다는 말이 그 중에서도 제일 재미있다. 장님굴 새우와 장님 거미이야기를 들을 때 문외한일망정,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의 학설을 실감하게 된다. 광명없는 세계에서는 눈이 있어도 무용지물이었을 것이다. 바이칼호에 사는 물고기들이 염수어에서 담수어로 바뀌어간 것처럼 대이골 종유굴의 새우와 거미는 장님으로 변하고 만 것이다.
환경은 생물의 기능을 규정한다. 사용하면 발달하고 쓰지 않으면 퇴화한다. 생각해 보면 인간도 하나의 동물이 아니겠는가?
장님거미를 보고 생각나는 것은 우리도 잘못하면 그런 세계의 신종·신속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대이골 종유굴처럼 세계사의 망각지대에서 혹은 그 어두운 정체의 동굴에서 햇빛을 보지 못한채 살아간다면 눈 없는 새우나 눈 없는 거미 꼴이 될지 모른다.
개방된 세계이다. 격동하는 역사이다. 우리도 70년대에는 근대화의 숙제를 다 푼다고 하는데, 어쩐 일인지 전파관리법이니 학원의 전ROTC화니 하는 괴물 같은 박쥐가 날아다닌다. 데모크라시의 시력은 날로 감퇴하고 있다. 세계의 시야도 자꾸 어두워져 간다. 세계를 향해 우리의 창문을 열고 세계사의 물결을 따라 우리가 호흡하지 않는다면 아마 대이골 종유굴에서 산다는 장님거미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눈이 없어지기 전에 광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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