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받는 「유일합법성」과 시류 타는 「두 개의 한국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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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동원 외무부장관은 13일 한국외교의 방향전환을 모색하는 중대한 발언을 했다.
새해에 접어들어 정부는 『북괴와 수교한 국가일지라도 우리의 외교적 실리가 보장된다고 판단될 때는 경제·문화적인 면에서 적극적인 접촉을 시도하겠다』고 말해 「두 개의 한국론」에 탄력성을 부여할 것을 강력히 시사했다.
그러나 「두 개의 한국론」에 과감한 수정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탄력성 또는 신축성을 불어넣겠다는 선에서 잡아놓기 위해 「두 개의 한국론」을 배제한다는 기본외교정책에는 변함이 없다고 못을 박아놓았다.
지난 20년 동안 정부는 한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이며 이 유일합법성에 도전하는, 즉 북괴와 외교관계를 맺는 어떤 나라와도 외교관계를 단절한다는 「할슈타인·독트린」을 외교정책의 근간으로 삼아왔다. 「할슈타인·독트린」은 서독외무차관 「할슈타인」 박사가 1956년6월28일 하원에서 천명한 외교정책으로 서독은 동독과 외교관계를 맺는 어떤 나라와도 단교한다는 방침이다. 단 소련은 전승국이란 이유로 예외로 취급했다.
한국판 「할슈타인·독트린」은 1960년부터 서서히 외교적 침식을 받기 시작했다.
동서의 삼원적 구조가 무너짐에 따라 미·소 냉전이라는 기본환경이 뒤흔들리게 되었고 「아프리카」 신생국가의 대거 「유엔」가입, 불란서의 중공 승인과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중공의 국제적 지위가 향상되고 이에 편승한 북괴가 외교공세를 벌이게됨으로써 우리의 외교환경은 큰 변화를 가져왔다. 「유엔」 총회에서 남·북한 동시초청안이 대두 되었고 제2차 아·아회의에 남·북한대표가 동석할 뻔한 사태로까지 번져갔다.
가장 본격적인 도전은 64년12월6일 정부가 우리외교사상 처음으로 북괴와 수교한 「모리타니」공화국과 단교를 선언한데서 비롯했다.
뒤이어 65년1월19일 두 번째로 「브라자빌·콩고」와 단교를 했다.
이러한 북괴의 외교적 도전과 우리를 둘러싼 국제외교환경의 변화 때문에 우리정부의 「두개의 한국론」 배제정책이 시련을 겪을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우선 「두개의 한국론」에 탄력성 또는 신축성을 부여한 예로 북괴와 수교한 통일 「아랍」공화국과 총영사관계를 「뉴델리」 「프놈펜」 「랭군」에 북괴와 나란히 총영사관을 개설한 점을 들 수 있다.
우리 정부도 「두개의 한국론」에 탄력성을 부여해야겠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면서도 그 부작용을 우려, 침묵을 지켜왔는데 이 외무의 이번 발언은 중공의 「유엔」가입이 목전에 박두했고 명분외교인 「유엔」외교가 제20차 총회를 고비로 벽에 부딪친데서온 불가피한 방향전환의 모색인 것 같다. 「두개의 한국론」에 탄력성을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외교환경에 적응한 실리·경제외교의 추구 ②북괴의 대「아프리카」·중동·중남미지역침투를 공세의 입장에서 막을 수 있고 ③북괴와 수교하는 국가와의 무조건 단교에서 오는 연쇄적인 단교사태는 감시보류할 수 있는 것 중의 이점이 있는 반면에 ⓛ「두개의 한국론」이 탄력성관계를 넘어 현실화 단계로 굳어진다면 AA 「블록」제국이 남·북한을 동시 승인할 가능성이 있다 ②이에 따라 「유엔」외교가 명분외교라고 하지만 「유엔」 총회에서 유일합법정부로 인정받은 한국이 남·북한대표 동시초청안을 감수해야하는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 ③정·경 분리원칙을 내세우는 일본이 한·일 기본조약을 무시하고 북괴와 접근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무진장한 경제력을 배경으로 가진 서독의 수정판 「할슈타인·독트린」은 경제자립을 향해 몸부림치는 한국에 그대로 적용시키기에는 힘에 겨운 부담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를 둘러싼 국제적 여건이 한국으로 하여금 「유일합법성만 내세우면서 두 개의 한국론」 배제정책을 고수할 수 있도록 전개되어가고 있지 않다는 것이 외교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러기에 적극·실리외교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20년내의 기본정책인 「두개의 한국론」 배제정책에도 탄력성, 또는 신축성을 불어넣는성 싶다.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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