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 167명 전원 감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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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미국 일리노이주가 주내에 수감 중인 사형수 전원을 감형해 주기로 결정함에 따라 미국 내에서 사형제도 폐지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퇴임을 이틀 앞둔 조지 라이언(사진) 일리노이주 지사는 11일 "'실수'라는 망령이 늘 따라다니는 죽음의 기계를 더이상 서투르게 만지지 않을 것"이라며 "남성 사형수 1백63명과 여성 사형수 네명에 대한 감형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1백67명 중 세명은 40년 이상의 금고형에, 나머지는 전원 가석방 없는 종신형 선고를 받게 됐다. 일리노이주 정부는 10일엔 경찰의 고문 등에 의해 거짓자백을 강요받은 사실이 드러난 사형수 네명을 특별사면했다.

일리노이주의 조치는 1976년 미국에서 사형제도가 부활된 이래 가장 큰 규모의 감형이다.

현재 50개주 가운데 38개주에서 사형이 합법화돼 있는 미국의 전체 사형수는 3천여명. 지난해에만 60여명이 처형됐다.

이 중 30% 이상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주지사를 지낸 텍사스에서 이뤄졌다. 미국은 여기에 국제인권협약에서 금지하고 있는 18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사형은 물론, 외국인의 경우 해당국에 통보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한 빈 영사협약을 무시하는 등 '선진국 최대의 사형집행국'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다.

이미 사형을 폐지한 유럽연합(EU)과 사형반대운동 단체들은 미국에 대해 '사형 철폐'압력을 행사하고 있으나 미국은 "주정부의 권한이 강한 만큼 국가가 이를 강요할 수는 없다"며 거부하고 있다.

사형 폐지의 최대 장애물은 여론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미국민의 60% 이상이 사형제도를 지지하고 있다.

라이언 지사 역시 주의원 시절인 77년 일리노이주의 사형제도 부활에 찬성했으나, 지사 취임 후인 2000년 1월부터 사형집행을 전면 중단시켰다.

사형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들은 "이번 조치는 사형제도 논쟁의 분수령"이라며 환영했다.

그러나 13일 취임하는 민주당 출신의 신임 주지사 당선자 로드 블라고예비치는 "모든 사건은 개별적으로 재검토돼야 한다"고 사형폐지에 반대했으며, 범죄 피해자 가족을 비롯한 사형 지지자들도 이번 결정에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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