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예산안 처리도 안 하면서 무슨 새 정치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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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올해 정기국회가 새해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한 채 그제 막을 내렸다. 일하는 국회를 내걸었던 19대 국회가 얼마나 국민의 기대와 동떨어져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새 정치에 앞장서겠다”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대선 캐치프레이즈가 표를 얻기 위한 구호에 불과하다는 점이 입증된 것이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행 헌법은 국회에 예산안 심의·확정 권한을 주면서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안을 의결하여야 한다’(54조)고 규정하고 있다. 예산안 처리 시한을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 즉 12월 2일로 못 박은 것은 예산 확정 후 정부가 집행을 준비하는데 한 달가량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 시한을 넘기면 예산 집행 및 사업 추진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19대 국회는 첫 정기국회부터 법정 시한은 물론 회기 내에도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하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이로써 법정 시한을 10년째 넘기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이런 위헌적 상황은 여야의 무능과 구태에서 비롯된 것이다. 앞서 여야는 대선 일정을 감안해 11월 22일까지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계수조정소위 위원을 어느 쪽에서 더 많이 차지하느냐를 놓고 다툰 데 이어 대선 공약 실현을 위한 증액 예산의 우선 편성 여부를 두고 또 맞붙었다. 이해할 수 없는 건 각 당의 대선 후보들이 이 상황을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각각 ‘국정쇄신 정책회의’ 신설, 국민정당 창당으로 새로운 정치를 실현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국가예산조차 법정시한 안에 처리하지 못하면서 무슨 국정쇄신과 새로운 정치가 가능하다는 말인가.

 이제 예산안 처리는 대선 이후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졌다.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 조기 집행에 제동이 걸리고, 취약계층 지원 등 주요 사업이 늦춰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많은 국민이 후보들의 입보다 국회의원들의 손을 지켜보고 있다. 여야는 지금이라도 당장 임시국회를 열어 예산안 처리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