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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이 피의자가 될 수는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대부분의 국민들이 비판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주민등록법개정안」이 일곱차례나 보류되었다가 지난 6일의 차관회의에서 다시 그 타당성이 인정되어 미구에, 국무회의에 상정될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 내용은 기보되었으므로 다시 되풀이 하지 않겠으나 그 특색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우려있는 많은 강제적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당국은 최근 현저하게 증가되고있는 남파간첩의 침투암약을 방지색출하기 위하여 부득이하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으나, 우리는 이미 「주민등록법개정안」이 반드시는 그 대책으로서 적절한 것이 아니라는것을 주장한 바 있다. 혹 그것이 표견상 어느정도의 효과를 가져올수도 있을듯이 생각될는지 모르나 결국은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하는것이 기본적요체로 되어있는 민주국가에서는 용인되기 어렵다는것을 우리는 다시한번 말하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간첩의 침투를 방지 색출해야 되겠다는 커다란 과제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를 무시해버릴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방법은 좀더 과학적이며 적극적인 것이어야 하는 것이지, 전국민을 피의자로 취급하는 식의 안이한 시책이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간첩색출은 고도로 발달된 과학적인 수사능력에 의해서 그 성과를 올리도록 해야할 것이며 이토록 노출된 방법은 간첩색출보다는 오히려 선량한 국민에게 의외의 누를 끼칠 염려가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전국민을 피의자시하는 태도는 정부당국자만이 애국자이고 그밖의 모든 사람들은 적과 내통할 수 있는 믿을 수 없는 자들이라는 선입관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간첩색출이나 반공활동은 정부당국의 독점의무가 아니다. 이것은 전국민의 공동임무이며, 전국민의 공고한 연대의식하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과제이다. 경찰이나 그밖의 수사기관이 항상 국민 한사람 한사람을 피의자로 간주하고 부단히 감시, 검문, 수색을 감행한다면 이것은 일반국민들의 반공연대의식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는것은 아닐까. 해방이후 오늘까지의 역사를 본다면, 실상 정부공무원에도 공산간첩은 있었으며 심지어 국회의원에도 그것이 있었다. 간첩색출이나 반공활동은 전국민의 의무이지, 결코 정부당국의 독점물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최근 간첩의 준동이 격증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점에 있어서는 오히려 미국·영국·독일·불란서등이 더 심할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하여 이런나라들에서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간첩색출, 반공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직 과문인 탓인지 들어본 일이 없다. 그러면 이러한 나라들에서는 왜 「주민등록증」식 공책을 취하지 않는것일까. 그 답은 명백히 국민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으며 또 그렇게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혹자는 우리나라가 아직 전시 혹은 준전시하에 있기 때문이라는것을 들어 정부조처의 정당화를 시도할는지 모른다. 확실히 이점은 미·영·서독·불등과 다른점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미국은 지금 대규모의 군대가 실지로 전투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이들 나라가 가지고 있는 방대한 군사적·정치적 기밀이라든지 세계적인 규모에 있어서의 반공의 책임이라든지를 생각한다면 사실 이들이야말로 우리보다 몇십배의 비상시에 처해 있는것이라고 하겠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는 민주국가다운 자유의 사상을 포기해서는 아니된다. 관료식 단견을 가지고 경솔한 조처를 취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위협하는 사태를 가져오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우리는 휴전선에서 항상 적과 대치상태에 있고 또한 간첩색출에 당국의 비상한 노고와 고충이 있음을 충분히 짐작하면서도 이 법제정에는 신중히 재고있기를 요망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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