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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문재인·안철수, 정책은 어떻게 단일화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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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정치인의 언어는 뜻의 분명함을 미덕으로 삼는다. 국가 지도자로서 정치인은 국민에게 희생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입에서 두 개의 신호가 나오는 모호한 언어는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고 국민에게 치명상을 가할 수 있다.

 그제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는 “정권 교체와 대선 승리를 위해 더욱 힘을 합치기로 했다. 대선 이후에도 긴밀히 협의하기로 했다”고 합의한 뒤, 어제는 부산에서 함께 유세를 벌였다.

 문 후보의 애절한 요청을 구걸정치, 안철수씨의 전격적 행동을 적선(積善)정치라고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선거는 어차피 게임이고 게임의 승리를 위해 후보들이 전략적 선택을 하는 것에 시비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문재인·안철수 두 정치인이 집권할 경우 어떤 정책으로 나라를 이끌어 갈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전혀 없이 유권자에게 표를 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점이다. 두 사람은 기껏 국회의원 정수를 축소하겠다는 정치적 합의 하나 해놓고 무슨 큰 일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 어깨를 두드리고 있다.

 서해북방한계선(NLL)에 관한 영토관, 금강산 관광과 남북 정상회담을 둘러싼 대북관,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안보관, 한·미 FTA 재협상을 보는 외교관. 이 네 가지 이슈에 대해 두 사람은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대통령의 영토관·대북관·안보관·외교관은 헌법이 그에게 가장 중요한 책무로 부여하고 있는 국가의 영속성, 국민의 생명보호와 직결된 문제다. 이 분야에서 대통령의 언어가 이중적이고 모호하면 군인과 민간인의 대규모 희생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문 후보는 11월 21일 안철수씨와의 TV토론에서 “(안 후보는) 금강산 재개도 북측의 (사과) 약속이 있어야 하고, 남북 공동어로구역도 NLL 인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선행조건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런 전제조치들을 다 풀고 북과 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씨는 “금강산 관광의 경우 재발 방지 대책이 있어야 한다. 이거 없이 재개한다면 우리 국민들이 불안해 가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결국 문 후보는 북측의 사과 없이도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겠다는 것이고, 안철수씨는 재발 방지 대책이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문 후보는 북측에 ‘NLL을 인정하라’는 전제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얘기고, 안씨는 다른 자리에서 ‘NLL을 사수하겠다’고 발언했으니 둘 사이의 입장 차가 크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서 문 후보는 ‘전면 중단, 재검토’인 반면, 안씨는 ‘계속 건설’이라는 입장이다. 현재 큰 문제 없이 발효 중인 한·미 FTA 협약에 대해 문 후보는 “재협상하겠다”고 얘기해 왔고, 안씨는 “문제가 발생할 경우 재협상하겠다”고 조건을 걸었다.

 이렇게 사사건건 미묘하거나 큰 차이가 나는 외교안보 문제에서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씨의 입장을 수용할 것인가, 수용하지 않을 것인가. 아니면 절충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씨는 공동의 답변을 내놔야 할 것이다. 특히 문 후보는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는 유력 후보인 만큼 우물쭈물하지 말고 분명한 언어로 가장 빠른 시기에 국민 전체를 상대로 답을 내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