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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이정희 후보 선동에 밀려난 정책 토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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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어젯밤 3인 후보 TV토론은 법에 따라 선관위가 주관했고 이번 대선에서 처음 열린 것이다. 그런 만큼 많은 기대와 관심이 모였으나 토론의 원칙과 목적으로 볼 때 부실하고 혼란스러우며 비효율적이었다.

 토론이란 창과 방패가 여러 번 교차하여 문제의 실체와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데 어제 토론은 검증은 사라지고 대부분 일방적인 주장, 동문서답(東問西答), 선동과 매도, 두루뭉술한 답변이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3인 중 여론조사와 상식상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는 후보는 박근혜와 문재인이다. 그런데 법에 따라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에게도 똑같이 3분의 1이 할애됐다. 2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네 가지 주제와 3인의 토론자에다 형식적인 앞뒤 인사말까지 구겨 넣으려니 토론 구성은 마치 ‘콩나물 시루’ 같았다.

 구성이 이러하니 특정 후보가 선동적 공세를 해도 검증할 시간과 장치가 없었다. 예를 들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최근 미국 의회가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분석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정희 후보는 “경제 주권을 빼앗긴 것”이라고 몰아붙였다. 천안함·연평도 같은 안보 문제에 통합진보당이 북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지적에 이 후보는 답을 하지 않았는데 재차 추궁하는 질문이 불가능했다.

 쌍용차 사태에 대한 회사 책임, 노무현 대통령 서거를 초래했다는 ‘대결의 정치’, 투표 시간 연장 필요성 같은 주장들도 일방적으로 제기만 됐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불가능했다.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이 통합진보당과 정책연대를 하면서 주한미군 철수 같은 과격한 주장은 어떻게 됐느냐는 문제도 메아리 없이 지나갔다.

 미국 대선 TV토론은 공화-민주 후보가 수치를 제시하며 구체적인 사안에 식견을 겨루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한국에서는 ‘형식적 균형’에 본질이 눌렸다. 시간에 쫓겨 정책 공방은 뒤편으로 밀렸고 그 공간을 소수당 급진후보가 1인 쇼로 채웠다. 이런 제도는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이번 대선에서는 하루빨리 방송사가 주관하는 박-문 대결을 통해 토론다운 토론이 벌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