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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노동 동일임금' 여전히 안개 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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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차별 철폐가 핵심적인 노동현안으로 떠올랐다.
이미 노동부와 인수위는 이 문제로 마찰을 빚고 있다.노동계와 재계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해법을 찾지 못할 경우 인수위로서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실천에 차질이 빚어진다는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야 할 판이다.노동부로서도 노동시장의 현실과 경제상황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편집자주>

◇비정규직이란=시간 단위로, 또는 특정 분야에 대해 사업주와 임금.근로조건 등에 관한 계약을 하고 일하는 근로자를 말한다. 상시근로자와 달리 계약이 만료되면 회사의 근로자 지위를 잃게 된다.

숫자는 기관마다 다르다. 노동부와 노사정위 등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국내 비정규직 근로자는 전체 임금 근로자의 28%다.

이에 비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등 노동계는 비정규직이 전체 임금 노동자 1천3백여만명의 54%인 7백37만명으로 추산하고, 올해는 8백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통계청의 경제활동 인구 조사에서는 임시.일용직 근로자 규모가 전체의 52%로 집계됐다.

◇왜 문제가 됐나=비정규직이 임금이나 근로조건 등에서 심한 차별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노.사.정이 모두 인정하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가 일하는 시간은 주당 평균 45.5시간으로 정규직(44시간)보다 길다. 그러나 월평균 임금은 96만원으로 정규직(1백82만원)의 절반 수준이다. 또 고용보험.산재보험 등 사회보험 가입률도 정규직의 4분의 1 수준이다. 상당수의 비정규직 근로자는 일하다 다치거나 실업자가 돼도 보상이나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

◇쟁점이 된 '동일노동 동일임금'=1989년 남녀고용평등법에 남녀 근로자간의 임금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이 신설되면서 나왔다. 남녀가 똑같은 가치의 일을 할 경우 같은 수준의 보수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인수위는 남녀간 보수 차별 철폐를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 해소의 수단으로 확대하고 있다. 인수위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대해 아직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는 않고 있다. 다만 노무현 당선자가 이를 공약으로 내세운 이상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노동부로선 법으로 강제해 시장을 변화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시각이다. 남녀 차별을 없애기 위한 '동일노동 동일임금'도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기업의 오랜 인사 관행이 한꺼번에 바뀌기 어렵기 때문이다.

◇평행선 달리는 노.사.정=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차별 문제가 불거지자 노사정위는 2001년 7월부터 머리를 맞대고 해법 찾기에 골몰했다. 그러나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 절충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한 경영계는 '빅딜'을 할 수 없는 처지다. 노동계로부터 얻어낼 것은 하나도 없고 내줄 것밖에 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노동계의 요구를 들어줄 경우 기업은 추가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이는 곧 기업의 경쟁력 저하로 연결된다. 반면 노동계는 비정규직이 해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사실상의 상시 노동자인데도 이들을 차별하는 것은 헌법의 평등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안 있나=노동부는 일단 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이의 현실적인 차이를 인정하고 선별적으로 차별을 줄여나가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또 비정규직 근로자를 줄여나가는 안도 구상 중이다.

다만 노동부는 유연화된 노동시장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미 비정규직의 형태가 ▶기간제 근로자▶단시간 근로자▶파견용역 근로자▶특수용역 근로자(캐디 등)로 복잡한 데다 새로운 형태의 비정규직도 계속 나타날 정도로 시장이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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