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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의기를 북돋우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오늘은 제36회 광주학생사건 기념일이자 제13회 학생의 날. 이 날의 정신사적 의의에 대해서는 따로 긴 설명을 필요치 않을 것으로 믿으나, 우리는 이제 연초부터의 엎치락 뒤치락으로 만신창이가 되다시피 한 오늘의 학원을 두고, 이 날을 기념하는 감회가 매우 착잡한 것을 금할 수가 없다.
36년전의 바로 오늘, 광주에서 일어났던 이른바 광주학생사건은 이 나라의 모든 애국학생들이 한데 뭉쳐 맨주먹으로 일본관헌의 총검에 항거하고, 민족의 자주독립정신을 선양했다는 점에 그 참뜻이 있다. 더군다나 이 사건은 삼일운동이래 10년, 당시의 일본총독 재등실이 소위 [문화정책]이란 가면 밑에 점차 눈뜨기 시작한 우리 겨레의 민족적 주체의식을 교묘하게 거세시키려고 온갖 회유정책을 쓰고 있던 때를 골라서 일어난 일이었던 만큼 그 의의가 한층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사건을 도화선으로 하여 전국에 번진 팽배한 학생독립운동과 또 그뒤를 이어 면면히 계승돼 내려온 이 나라의 모든 학생 동은 그 핵심에 바로 이따위 가장된 문화정책이나 회유정책으로써는 도저히 굽힐 수 없는 발랄한 이 땅 젊은이들의 기백이 깔려있음을 실증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봄 이래의 사태로,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수천명 학생이 당국의 준엄한 문초의 대상에 올랐고. 수백명 학생은 아직도 옥사를 풀려 나오지 못한채, 다시 학생의 날을 맞게 된 것이다. 따라서 금춘이래 한·일문제를 에워싸고 소용돌이치던 이 나라 학생들의 현실 참여에 대한 공과를 논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이제 우리는 오늘의 학생의 날을 기념하는데 있어 새로운 국면을 찾아야할 단계에 도달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으로 믿는다. 지금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위정당국자로부터 버림을 받고 오히려 경계의 눈초리의 대상이 돼있다는 것이 엄연한 실정일 것이다. 이리하여 그들은 마땅히 받아야할 기성세대로부터의 자애 어린 보살핌보다는 싸늘한 감시와 질책속에서 내일의 방향을 정립시키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오늘날의 학생과 청년들이 36년전에 비하여 전반적인 정신연령이 낮아지고, 젊은이다운 기백과 예절에 있어 모자람이 많다는 비난은 자주 듣는 소리다. 그렇지만 그 책임의 태반은 기성세대와 오늘의 불안한 사회가 져야 할 것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학생들의 의기를 마음껏 펴게 하고, 그들의 젊은이다운 행동을 애정으로 보아 넘길 줄 아는 너그럽고 자애로운 사회기풍을 조장하기는커녕, 이들을 멸시하고 경계하려고만 하는 비정이 판을 치는 오늘의 우리사회에 있어 위정자나 모든 지도자들은 다시 한번 겸허한 자가비판을 앞세워 할 것이 아닐까.
우리는 해마다 맞이하는 학생의 날에 즈음하여 다채로운 행사를 벌이고, 고관신사들이 줄지어 축사를 읽고, 화려한 기념비에의 헌화를 일삼는 것을 굳이 나무랄 생각은 없다. 다만 그러한 행사, 그러한 축사와 헌화가 지난날의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정신을 진실로 기념하고, 오늘을 사는 세대의 의기를 높여줄 수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이 나라의 모든 지도급 인사들이 이제 단 한가지씩이라도 매년 이들 젊은이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문제에 대한 건실한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알찬 기념사업을 벌일 성의를 보여주어야 할 것으로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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