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에 돌아와서-④|김소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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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부산서 제일번화한「메인·스트리트」를 지금은 광복동이라고 부리지만 일제시대 이름은「나가떼도리」(장수통)다. 여기「나쓰가와」(하천)라는 일인상점이 있었다.
4층「빌딩」의 벽에 커다랗게 붙은「레트·크림」이란 일본「가다까나」글자는 금색이 찬연한채 해방후 5년이 지나도록 누구하나 떼려는 사람이 없다. 바로 내가 동회장 노릇을 하던 동네다. 먼저 앞서서 떼어 없애자고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 집을 차지한 임자에게도 자존심이 있을 것이다.
철근으로 단단히 붙어져 있어서 사닥다리하나 인부 한둘로는 쉽사리 철거하기 어려운 사정도 있으리라. 그렇다고 해서 먼데서도 보이는 그 일본 화장품 광고를 언제까지나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집 자리에서 보석 시계점을 경영하는 주인더러 한두번 이야기를 걸어 보았으나 쾌한 대답을 듣지는 못한 채 날이 지났다.
그런 예는 부산천지에 수두룩하다. 하필「레트·크림」하나의 문제는 아니다.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
은행회사에서는 결산기 같은 바쁜때는「오십팔원이요」하고 주산을 놓느니보다「고쥬 빠엔나리」가 신속하고 정확하다는 얘기다. 서울 같은데서도「광화문 칠십삼번-」하다가「칠십사번요?」하고 교환수가 두어번만 되물으면「나나쥬산방!」하고 소리를 질러야 거침없이 통한다고 한다. 혼동키 쉬운 수자는 어떻게 했으면 틀리지 않고 알아들을 수 있게 될까? 여기도 궁리해야 할 과제가 있다.
눈으로, 귀로, 보고 듣는 문제외에도 더 딱한 것은 생활의 습성속에 뿌리를 내린「일본」이다.
한때「스시」「덴뿌라」들을「초밥」이니「화전」이니 해서 고쳐 쓰라는 영이 내렸다. 1년이 채 못가서 그 이름들은 본래 명칭으로 돌아갔다고 기억하는데 나는 음식의 이름 따위를 굳이 개의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다. 음식 구매에까지 민족의식을 결부시킨다는 것은 그야말로 일본식「용렬」이다.
중·일 전쟁때「시나소바(지나국수)의 행상을 분했다가 나중엔 국수을 먹어 삼킨다」는 의미로 되려 장려했다는 가소로운「에피소드」가 일본에 있었거니와,「스시」「덴뿌라」를 먹는다고 해서 일본인이 될 까닭도 없고, 하물며 그 이름을 고쳐 보았다고 민족정신이 유지될리도 만무하다.
그런 구구한 문제보다도 그런 것을 경영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에 이랏샤이」(어서 오십시오)- 말만은 우리말인데 그 어조, 그「액센트」는 영락없이 일본식이다. 차그릇을 손님앞에 두면서「에 오마찌」이건「오마찌도오사마」(늦었습니다. 기다리셨습니다)를 반토막 잘라서 일본「스시」집에서 쓰는 어투이다.
그 어투를 그냥따서 소리만「엑」하고 지르는데, 정작 그게 무어라고 한 소리인지는 차잔을 가져온 점원자신도 모를 것이다.
부산남포동 거리에는 이런 장삿집이 질펀히 널려 섰는데 그 중에는 일본식 메밀국수를 파는 집이 있다.
여름철쯤 되면「모리소바」를 찾는 손님으로 언제나 대성황을 이룬다.
이를테면 손님 셋이 들어와서「모리소바셋」하면 점원 아이놈은 목청을 돋우어서「에 모리산닌마에」하고 부엌쪽에다 소리를 지른다. 이런 풍속들이 설마 지금까지 남아 있을리야 없다. 그러나 그당시 그런 가게 벽에는 으레「대한민국 공보처」의 전지「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가로되「선색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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