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김영란 떠났지만 ‘김영란 법’은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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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고질적인 청탁 문화가 한국 사회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거듭해 확인되고 있다. 특히 비리를 파헤쳐야 할 사정(司正)의 중추인 검사들이 돈이나 향응을 받고 사건 처리를 했다는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이제는 청탁의 고리를 끊을 획기적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크고 작은 금품 수수로 공무원들이 처벌받고 징계받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검찰에서 터져나온 비리 의혹들은 공직사회의 부패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검사들이 수사 과정에서 거액을 받거나 여성 피의자와 부적절한 성관계를 한 것으로 드러난 데 이어, 광주지검의 한 검사는 청탁성 수사를 했다는 의혹으로 감찰 조사를 받고 있다. ‘돈 검사’ ‘성(性) 검사’라고 비판받는 검찰이 사정기관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깨끗한 공직사회’ 조성을 공직자들의 자체 의지에만 맡길 수 없다고 본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입법예고한 ‘부정청탁 금지 및 이해충돌방지법’(일명 ‘김영란 법’)에 주목하는 건 그래서다. 이 법안의 취지는 ‘떡값’ ‘스폰서’ 관행을 근절하자는 것이다. 공직자가 100만원이 넘는 금품 등을 받을 경우 대가성이 없더라도 3년 이하의 징역이나 수수한 금품의 5배에 해당하는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대법관 출신으로 법안 마련을 주도했던 김영란 전 위원장이 남편 강지원 변호사의 대선 출마로 지난 26일 물러났지만 이 법은 그의 퇴임과 관계없이 추진돼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공직사회의 반발로 연내 입법화가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관계부처인 법무부는 “직무관련성이 없는 일체의 금품수수를 공직자라는 이유만으로 일률적으로 형사처벌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등의 의견을 냈다고 한다. 직무관련성, 즉 대가성이 있어야 처벌하는 뇌물죄를 두고 있는 현행 법체계와 배치될 수 있다는 논리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처럼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뭐든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금품·향응을 제공하는 것이다. 아울러 공직자에겐 일반인과 다른 도덕적 기준이 요구된다. 법안에 문제가 있다면 미비점을 손질하면 된다. 심도 있는 부처 간 협의가 필요하지만 그것이 법안을 표류시키거나 무산시키는 빌미가 돼선 안 된다.

 김 전 위원장은 검찰 파문을 언급하며 “마음가짐만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필요한 법이라면 제가 없어도 처리될 것이라 믿는다”는 말을 남겼다. 국민이 부여한 권한으로 돈과 향응의 단맛을 누리려는 공직자들이 있는 한 투명한 사회는 요원할 뿐이다. 정부는 법안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협의를 서둘러 마무리한 뒤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에 ‘김영란 법’이 제정된다면 청탁 비리로 곤욕을 치렀던 현 정부도 “공직 문화 혁신을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