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궁할 때는 적에게 기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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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제8보(90~103)=결국 우상은 백의 수중에 떨어졌습니다. 흑의 강동윤 9단이 현란하게 변화를 주도했지만 실속은 아무래도 백이 챙긴 것 같군요. 장웨이제 9단도 속으로 미소를 짓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촉망 중에도 93, 95의 ‘잽’은 날카로웠습니다. 이 수순으로 흑은 A의 선수를 얻어냈습니다.

 물론 승부의 본 무대는 97로부터 시작되는 하변인 건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이곳은 흑이 전 재산을 투자한 마지막 ‘엘도라도’ 같은 곳이지요. 백의 파괴 공작에 맞서 ‘황금’을 얼마나 지켜내느냐가 최후의 승부입니다(그러나 고수들은 이런 떨리는 승부를 목전에 두고서도 93, 95와 같은 잔돈 챙기기를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 주세요).

 장웨이제는 98로 들어왔습니다. 꽤 멀찍이 들어온 것 같지만 흑이 B로 막는 건 ‘백승’이라는 거지요. 계산서가 나온 겁니다.

흑은 99로 크게 씌워 일단 동태를 살핍니다. A가 선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퇴로가 불확실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백도 준비된 수단이 있지요. 바로 100과 102로 깊숙이 파고드는 겁니다.

100에 흑이 ‘참고도’ 흑1로 협공하는 것은 백2, 4의 맥이 있어 하변이 그대로 돌파되고 맙니다. 101로 받자 이번엔 102로 부딪혀 갑니다. “궁할 때는 적에게 기대라”는 유명한 기훈이 있지요. 몸과 몸이 부딪히면 온기가 생기는 것처럼 돌도 서로 부딪히면 탄력을 얻게 되는 법이지요. 흑도 탄력을 주기 싫어 최대한 얌전히(103) 받아둡니다.

 바로 이 장면에서 백은 전략의 기로에 섰습니다. 정면 승부냐, 타협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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