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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자립에의 도정」어디까지 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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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아무리 가기 싫다해도 가야하는 길. 갈 수 없대서 중단하면 모든 것이 끝을 알리는「경제 자립의 길」이다.
이 길을 닦지 않는 한 정치적 독립이 완전할 수 없고 이 길이 황폐해 있으면 사회의 안녕과 복지가 지속될 수 없다.
일제의 피치에서 독립의 제단에 뿌린 선열의 선혈이 그렇고, 해방 20년에 엎치락 뒤치락 뒤바뀐 정권의 교체가 이 길을 찾기 위함이라 했다.
독립을 찾은 지 20년. 위정자들이 다투어 이 길을 닦는다 했지만 경제자립의 터전은 아직도 「후진의 대열」에서 「의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채 있다.
점감되고 있는 원조액에 한국 경제는 해마다 자율·타율 양면에서 자립을 재촉 받고 있는 현실이며 자립의 이정표는 전에 없이 초조하기만 하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앞길이라 하여 자립의 좌표가 없을 리는 없다.
이 좌표는 모든 선진국이 진통을 겪었듯이 우리에게도 그 고통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지 결코 자립의 「마일스톤」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해방 20년동안 한결 같이 외쳐온 이「자립경제」의 넋두리가 어디까지 흘러왔으며, 또 어떻게 전진하고 있으며, 어디까지 헤엄쳐 나가면 숨가쁜 현실을 벗어나서 자립의 환희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가를 전망해 본다.

<공백상태의 원조경제 발자취>
l945연 8월15일. 해방된 기쁨의 소용돌이 속에는, 36년간에 걸친 일본의 식민정책이 우리 민족자본형성을 허용치 않아, 일본의 배급제에 목숨을 걸어 놓았던 우리의 생활은 종전과 더불어 거의 공백상태로 들어가야 했었다. 바로 이해에 미국은 패전국에 대한 구호정책을 한국에도 쏟았다.
CARIOA (점령지구행정구호원조)가 4백93만4천불을 증여, 긴급 구호의 약품과 양곡을 풀어 놓았던 일이 미국의 대한 원조의 출발이었다. 46년에는 CARIOA자금 4천9백50만불로 대한구호원조가 본격화 하여 47년에 1억7천5백만불, 48년에 1억8천만불 규모를 유지했다가 49년에는 경제원조의 성격을 띤 ECA(경제협조처)의 발촉으로 9천2백만불로 감소, 모두 5억2백만불에 달하는 전재복구 긴급구호를 받아야만 했었다.
이후 긴급구호에서부터「달러」로 연명된 한국경제는, 그후 ECA자금 1억9백16만불(49∼53년), CRIK (전시민간구호원조) 로부터 4억5천40만불(50∼55년)을 받아들여 거의 숨쉴 단계에 들어갈 뻔 했었으나 6·25사변으로 다시 침몰 상태에 빠졌었다.
53년 휴전이후 MSA(상호안전보장법)에 따라 방위지원이 개시, UNKRA (유엔한국부흥단) FOA(대외협조처) 자금을 함께 받아 들이기 시작, 다시 ICA, AID등으로 미국의 대외원조기구 개칭과정을 거치면서 480호 잉여농산물 원조까지 합쳐 총액 38억4천8백77만9천불을 무상으로 받아 들였다.
이 미국의 외원추세를 요약하면 45∼50년까지의 구호원조, 51∼58년 사이의 방위지원 및 6·25동란 피해의 복구 및 구호가 병행되었으며 60년대에 들어가서 경제개발원조로 전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근 40억불의 원조액이 생산재생산에는 10%미만이 투입되었으며 거의 대부분이 소비재 도입에 충당되었다. 이는 장기식민지 경제를 바탕한 한국경제풍토가 자본형성의 기간에 앞서 식생활의 위협을 받아야 했고 6·25의 과중한 피해가 소비재 수요를 강요했다는 현실적인 욕구에 기인된다.
이 소비재 집중수요에 곁들인 부작용은 소비성향을 과분하게 향상시키는 한편 이의 원료대외의존도를 높여 경제구조의 기형적인 발달을 면치 못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미국의 대한원조는「한국의 새로운 사치와 비경제적인 수입을 조장」시켰다는 비판이 미국심계원 감사보고서에서까지 지적되기도 했던 것이다.

<소득 수준면서 본 경제의 좌표 세워>
「유엔」에 의한 64년도 세계 81개국의 1인당 국민 총 생산은 「쿠웨이트」가 1인당 3천2백57불14선으로 수위, 최하위는「이디오피아」의 46불인데 한국은 77불41선 (한은 총계에는 1백7불임) 으로 최하위로부터 15위에 위치했다.
그런데 62년도의 1인당 평균 국민소득수준은 79「달러」로 소득분석이 끝난 54개국 중 끝에서 제7위. 20년의「원조로점철」된 한국경제의 자화상으로는 쑥스럽기만 하다.
「유엔」은 54개국의 국민소득 분석을 6개 집단으로 구분 ▲l인당 l천l「달러」이상의 미국등 15개국이 제l집단 ▲제2집단은 1천「달러」∼7백51「달러」로 이태리와「오스트리아」 2개국 ▲제3집단 7백50∼5백1「달러」는「핀란드」등 5개국 ▲제4집단 5백「달러」∼2백51「달러」는 일본등 10개국 ▲제5집단 2백50∼1백1「달러」는 자유중국등 14개국, 끝으로 ▲1인당 1백「달러」이하의 6집단 8개국 중에서는 한국(79「달러」신계열 통계로는 83·8「달러」)이 태국 다음으로 위치했다. 한국보다 뒤떨어진 나라는「인도네시아」,「파키스탄」,인도, 월남,「버마」의 순위로 6개국. 같은 피원조국으로 인도나 월남보다 한국이 약간 앞서 있다는데 자위(?)할 수 있겠지만, 또 64년도의 1인당 소득이 95불로 수정되었으나 어쨌든 1백불이하의 제6집단을 벗어나지 못하며 2년전 태국의 1백불 수준에도 미달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편 GDP (국내생산) 성장률은 53년∼63년까지 평균 성장률이 4·8인데 1인당 소득 성장률은 불과 2%로 연간 2·8%의 인구 성장률이 한스럽다.
한국의 인구증가율 2·8%는 최고 성장률을 가진 태국의 4·2%보다 1·4%가 낮은 수준이지만 세계에서 제8위에 이르고 있다. 동남아에서는 중국의 3·7%,「필리핀」의 3·l% 다음 제4위에 속하고 있다.

<고려되어야 할 국제수지 균형>
자립경제수준을 정의하는 뚜렷한 정설은 없다.「굶주리지 않는 삶」을 자립으로 규정지을 수도 있고 1인당소득 2천「달러」를 넘는 선진국의 수준을 자립목표로 삼을 수도 있듯이 자립의 기준은 그 나라의 주관적 목표설정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다만 한 나라가 양적인 면에서의 경제후생을 1인당 국민소득으로 측정할 수 있다.
소득향상(증산)이 이루어지더라도 그 소득의 균형화와 경제생활의 안정화를 뒷받침하는 시책수단이 따라야 한다는 것은「피구」교수가 강조한 이론이기도 하다.
그러나 소득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외국의 차입자본이나 외원의존도가 높으면 질적인 면에서 자립의 기반이 튼튼하다고 볼 수 없다.
또 사업구조면에 있어서도 자연조건의 영향을 크게 받는 일차산업비중이 너무 높고 공업부분이 빈약하거나 실업률이 높아서도 자립경제의 내용은 충실한 것이 못된다.
따라서 소득의 증가와 국제수지의 균형 내지 흑자, 그리고 산업구조와 실업률 문제등이 아울러 고려되어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미국과 같은 선진 개발국에서는 완전 고용이란 명제를 경제과제의 지상으로 삼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후진국에서는 증산(소득향상)과 공업화를 개발투쟁의 목적으로 내걸고 있다.
우선 소득 수준면에서 본다면 현재 우리나라는 l인당 95불, 세계각국의 소득 수준별 분류에 있어서 1백불미만의 최하위「그룹」인 제6집단에 속해 있다. 앞으로 5불 가량만 더 오르게 되면 겨우 최하위 집단을 벗어날 수는 있으나 소득 l백불이상 2백50불미만의 제5집단도 역시 후진국의 「카태고리」로 규정되어 있으므로 국제경제권에서의 한국경제의 자립수준을 찾는다면 먼저 소득면에서도 중진국 대열인 2백50불이상의 제3, 4집단에 끼어야 한다는 목표를 바라보게 된다.
그런데 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초년도(62년)에 84불(신계열계수)이던 l인당 국민소득이 64년에는 95.6불에 이르렀음에 비추어 1차 5개년계획 마지막 고비인 65, 66년을 지나면 제6집단을 넘어설 것은 거의 확실하다.
1차 5개년계획이 집행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저질렀다고는 하나 자립의욕을 내외에 과시하고 그 의욕을 구체적으로 설계, 실천했다는 점에서 한국경제사상 커다란 의의를 남기게 된 것은 사실이다. 아울러 2차 5개년계획을 보다 현실적이고 유효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자신을 다짐하는데 값비싼 경험을 치른 셈이기도 하다.
그러면 2차 5개년계획이 끝나면 우리가 중간적 소망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전기한 2백50불 이상의 중진국의 이정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실현키 힘들다고 단정하고 있는 2차 5개년계획중의 연간 경제 성장률 7%선을 비록 달성하게 된다는 확신을 앞세운다 하더라도 2차5개년계획의 마지막 해인 1971년도에 1인상 소득이 1백50불 내외가량이 될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국제수지면에서도 64년도의 상품수출 1억2천, 수입 3억6천5백만불에서 입초 2억4천5백만불 이었음에 대비하여 1971년도의 상품수출 5억5천불, 수입 7억9만불, 입초 2억4천만불로 수출은 약 4배, 수입은 2배강으로 결국 상품 무역규모는 확대되는 것이지만 입초율이 상대적으로 줄었을 뿐 그 입초규모는 거의 동일한 수준을 유지한다. 이밖에 무역외수지, 원조, 자본수입등을 논외로 하더라도 2차 5개년계획중에 국제수지는 다소 개선되는 셈이지만 균형단계는 이루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실업률에 있어서도 64년도의 13·8%(l백21만명) 에서 71년도에는 10·3% (1백6만명, 인구증가율 2·8%에서 2%로 점감계상)로 낮아지게 계획되고 있으나 역시 완전고용상태의 과정은 멀기만 하다.

<아직 거리가 먼 자립에의 단계>
「경제체제내에 지속적인 발전을 내포하고 완숙단계」에 돌입할 수 있는 태세를 자립경제로 정의하는 학자도 있다. 다시 말해서 전술한「유엔」의 1인당 국민소득분류에 의한 제4집단, 즉 1인당 소득이 2백51불에서 5백불까지의 수준이 그러한「카테고리」에 속한다고 했다.
한국의 경우 이「자립에의 길」까지에는 ▲1인당 국민소득 증가율이 인구 증가율을 큰 폭으로 상회해야 하고 ▲GNP(국민총생산)의 산업별 구성비율은 현재의 1차산업 37·2, 2차 16·2, 3차 46·6에서 최소한 1, 2차 산업의 구성비가 뒤바뀌어야 하며▲국제수지적자가 완전히 불식되어야 하고 ▲13·8%에 달하는 실업률(가용노동력에 대한)을 대폭 감축시켜야 한다는 대전제가 요구된다.
현재의 시점에서 한국경제의 좌표는「도약단계」에 이르렀다고「W·W·로스토」교수 (미국 MIT대학) 가 말했다.
「로스토」교수의 도약단계설은 NNP (순 국민총생산) 에 대한 생산적·투자율의 5%이하에서 10%이상의 상승과 높은 성장률을 갖는 실질적인 제조업부문의 발달에 근거하고 있으며 60년대에 들어서 우리의 GNP대 투자율이 15%이상이라는 점과 산업생산지수가 60∼64년에 걸쳐 64%나 뛰었다는 점을 지적해서 평가한 것이다.
이「도약」이 자립경제를 지향하고 있다면 「자립에의 길」은 이제 그 이정의 발판을 구축했다고 볼 수 있다.

<중진국단계까지는 얼마나 더 걸릴까?>
자립경제의 발판이기도 한 오늘의 도약단계를 벗어나서 중진국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과연 얼마나 걸릴까? 이는 도약기간중에 깔려 있는 장해물 제거의 가능성 여부와 이에 소요되는 시간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64년도의 1인당 국민소득 95불60선(신계열계수, 구계열은 87불60선)을 2백50불선으로 끌어 올리는데 제거해야 할 장해물과 그 제거기간이 얼마나 걸릴 것인가에 대해서 아무도 단정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우선 간단한 계산으로 따져 65년도의 1인당 국민소득을 1백불선으로 잡고 연간 l인당 국민소득 성장률을 10%로 설립했을 경우 75년에 가서 2백56불로 계산, 6집단에서 5집단을 거쳐 제4집단에 들어 갈 수 있다.
그러나 이 가정은 사실상 불가능. 연간 인구성장률 2·8%를 감안하면 실질소득 성장률은 연간 12%선을 넘어서야 하며 이는 53∼62년의 기간중 GNP 평균 성장률 4·8%나 1인당 평균 소득성장률 2%와 비교하면 희망에 치우친 과대의욕이다.
61년도를 기준 연도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집행 중간평가가 GNP계획 성장률 6·5%에 비해 실적은 5·5%로 계획에 1%가 미달되는 부진한 실적을 비쳤고 연간 7%선을 목표한 2차 5개년계획이 계량모형측량에서「실현성희박」이라는 딱지가 붙어 재조정 중에 있다.
1인당 국민소득 성장률을 연평균 5%로 간주하더라도 65년 소득액을 1백불로 기준, 70년에 1백27불60선, 75년에 1백63불30선, 80년에 들어 2백9불로 2백불선을 돌파, 다시 제4집단에 들어서려면 5년후인 85년에 가서 2백67불50선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재의 인구 증가율을 연 2·8%에서 2%로 줄이고 GNP 성장률 연 7%선으로 책정, 1인당 국민소득 성장률을 연간 5%이상의 상승을 강행해야만 앞으로 20년후에 「자립경제의 대로」에 비로소 첫 발을 내 디딜 수 있다는 결론이다. 인구 성장률을 2%로 줄이기 위하여는 치밀하고도 과학적인 가족계획이 필요하다.
GNP를 연간 평균 7%선으로 올리기 위하여는 내자동원범위를 최대한으로 확대시켜야 한다.
또 현실적으로 외자도입만이 절대적 정책목표는 결코 아니며 이를 상환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제2차 5개년계획이 성공적으로 집행된다 해도 제3·4·5개년 계획을 계속적으로 성공시켜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제2차 5개년계획이 연간 GNP 성장률을 7% 책정함에 있어서 국민저축, 국제수지, 국내투자, 인구증가율 조정, 해외수입등 제「팩터」가 실현성이 없다는 결론을 얻어 연 6%로 줄어들 기세가 엿보임으로써 앞으로 10년내지 20년내의 도약단계 탈피는 성급한 기대일 수도 있다.

<개발투쟁에 국민적 정열 한데 묶어야…>
20년, 아니 2백년이 걸린다 해도 이「자립에의 길」을 외면할 수는 없는 것.「W·W·로스토」교수의 이론에 의한 각국의 도약기간을 보면 영국 19년,「프랑스」30년, 미국 17년, 독일 23년,「스웨덴」22년, 일본 22년,「러시아」24년,「캐나다」18년이다.
이들 선진열강의 도약기간이 모두 15년이상 30년 미만이라는 사실은 도약단계의 한국경제를 고무적으로 자극하고 있지만….
눈앞에 가로 놓인 장해물은 하나 같이 전진을 방해하고 있는 현실적인 견지에서 실로 험한길을 조심스럽고도 한결같은 발길을 옮기지 않으면「자립에의 길」은 더욱 아득해질 것이다.
잠재「인플레」가 배출구를 찾고 있는 물가수준에서부터 적자에서 허덕이는 국제수지가 그렇고, 힘에 겨운 내자동원과 투기만을 찾고 있는 사금융, 13%에 달하는 1백20만 실업자, 사회 간접자본의 결핍, 낙후된 과학기술등…. 하나 같이 벽을 이루고「자립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것이다.
경제는 기적이 없는 것.
하루가 빠져 1년일 수 없고 1년이 쌓여 10년, 백년이 이루어 진다면「자립에의 길」도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기적을 바랄 수는 없다.
이 자립경제를 성취하는데 기적이 있다면 그것은 도약기간중의 장해물 제거에「너」「나」가 없는, 단결과 전진을 위한 오늘의 진통을 참고 온 국민이 개발투쟁에 관능적 정열을 함께 하는 길이 요청될 뿐이다.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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