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설계사 급증…'고아'된 내 보험 어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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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회사원 최모(43)씨는 얼마 전 허리를 다친 어머니를 대신해 보험금을 청구했다가 거절당했다. 5개월간 보험금을 내지 않아 실효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영문을 알아보니 어머니가 주거래은행을 옮기는 과정에서 보험료 자동이체 변경을 빠뜨린 것이었다. 최씨가 “보험계약이 실효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항의하자 보험사는 “계약서상 주소로 여러 차례 통보했다”고 맞섰다. 보험사 관계자는 “5년 전 최씨와 계약한 설계사가 곧바로 회사를 옮기고 최씨도 이사하는 바람에 제대로 통보가 안 됐다”면서도 “일단 실효가 되면 보험금을 지급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보험사를 자주 옮겨다니는 ‘철새 설계사’가 늘고 있다. 보험계약에 대한 관리가 소홀해지며 가입자가 피해를 볼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2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생명보험사의 설계사 정착률은 지난 9월 말 34.8%를 기록했다. 반년 전보다 0.8%포인트 떨어진 수치다. 정착률은 한 회사에서 1년 넘게 활동하는 설계사 비중이다. 이 비중이 작아질수록 1년이 안 돼 회사를 옮기거나 그만두는 설계사가 많다는 뜻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생보사의 설계사 정착률은 2010년 이후 줄곧 33~35% 사이에 머물고 있다”며 “설계사 셋 중 둘은 철새”라고 전했다. 손해보험업계 사정도 다르지 않다. 같은 기간 중 손보업계의 설계사 정착률은 45~46% 선에 그쳤다.

 최근엔 대형사의 정착률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교보생명의 정착률은 지난 9월 말 38.4%로 2010년 3월 말보다 10%포인트 하락했다. 생·손보업계 1위인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설계사 정착률도 같은 기간 46.8%와 55.1%에서 38.7%와 48.5%로 각각 낮아졌다. 한 대형사 관계자는 “불완전 판매나 친·인척 상대 영업 등을 엄격히 관리하다 보니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설계사가 늘어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보험사 관계자도 “설계사 수당을 오랜 기간에 나눠주는 방식으로 전환하다 보니 수당을 판매 초기에 몰아주는 곳으로 떠난 사례가 많다”고 강조했다.

 철새 설계사 증가는 ‘고아 계약’으로 이어진다. 고아 계약은 담당 설계사가 없어 관리가 안 되는 보험계약을 일컫는다. 불완전 판매나 보험금 지급 등을 둘러싼 민원의 대부분이 여기서 비롯된다.

 회사원 서모(30·여)씨는 최근 연금보험 해약으로 200만원을 손해보고 보험사와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했다. 1년반 전 지인의 소개로 전화를 통해 보험에 가입한 게 화근이었다. 설계사는 가입 당시 “월 보험료 30만원을 내면 사망보험금 1억원을 받는다”며 “만나기 번거로우니 청약서에 대신 사인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서씨가 결혼을 앞두고 꺼내본 약관엔 ‘70세 이후 사망 땐 2000만원만 준다’고 적혀 있었다. 서씨가 설계사에게 따지려고 했지만 전화가 안 됐다. 보험사에 항의했더니 “우리도 연락이 끊겼다”며 “본인 사인이 맞는지 아닌지는 눈으로 확인이 안 된다”고 발뺌했다.

 금융소비자단체는 신규 계약의 최고 90%가 3년 내 고아계약이 되는 것으로 추정한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3년 전 계약한 설계사가 그대로 남아 있을 확률은 10%가 채 안 된다는 얘기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부회장은 “보험사와 고객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설계사가 사라지면 고객들이 보험료 납부나 보험금 청구와 관련된 정보를 제때 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며 “기존 계약을 ‘잡은 물고기’로 여기는 보험사들의 안이한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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