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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사퇴 “잘한 결정” 52% “잘못한 결정” 34%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아름다운 단일화 같은 소리하네. 안철수 비난한 것들 부끄러운 줄 알아라. 만족스럽냐. 권력을 내려놓지 않은 것은 야권 또한 마찬가지다. 신물 나게 싸워 봐라. 목적을 상실한 권력. 근본을 상실한 권력. 권력 그 자체를 위한 권력….”
영화배우 유아인은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사퇴한 뒤 트위터에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남겼다. 민주통합당은 24일 오후 ‘영화배우 유아인씨의 말을 무겁게 경청한다’는 논평을 냈다.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셨던 분들의 심정을 일정 부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거운 마음으로 경청한다.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셨던 분들의 마음,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을 받아 안고 민주당은 혁신 또 혁신하겠다.”

영화배우 유아인의 짧은 트윗에 대한 민주당의 이례적인 공식 논평은 안철수 사퇴 이후 민주당의 고민을 보여준다. 안 후보 지지층을 끌어안는 근본적인 문제다. 문재인 캠프 공동선대위원장단 10명이 총사퇴하고, 안철수 캠프 인사들을 공동선대위에 참여시키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민주당은 이날 안 후보 사퇴에 대한 새누리당의 공세를 막는 데 주력했다. 문재인 캠프 박광온 대변인은 “새누리당이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와 정권 교체를 위한 백의종군 결단을 ‘벽을 넘지 못한 행동’ ‘실패한 정치실험’으로 폄하하고 있다.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를 위한 희생적 결단을 내리자 당황한 나머지 좌절한 정치실험으로 몰아 단일화 효과를 차단하려는 떳떳하지 못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후보 지지층 이탈을 우려해서다.

안 후보 지지층의 이탈 움직임은 본지가 24일 여론조사업체 엠브레인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어느 정도 나타난다. 조사 결과 안철수 후보 지지층의 55%만이 문후보 쪽으로 옮겨갔다. 나머지는 부동층으로 돌아서거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쪽으로 지지를 바꿨다. 엠브레인이 지난 16~17일 실시한 조사에선 문재인 후보로 단일화될 경우 안 후보 지지자의 70.8%가 옮겨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선 16%포인트가량 떨어진 것이다.

지금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 후보 지지층은 30%가량이 비(非)민주당 성향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박근혜·문재인 대결이 이뤄질 경우 부동층으로 남거나 박 후보로 지지를 바꿨다. 안 후보 사퇴 후 지지자 상당수가 고민 중이란 얘기다. 안 후보 공식 팬클럽인 ‘안철수와 해피스’의 오태양 사무국장은 이날 문재인 후보 지지 여부에 대해 “지금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할 말이 없다”고만 말했다.

김형준(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3자대결 구도 때 안철수 후보에 대한 지속적인 지지층은 최소 20% 이상이었다. 기존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 세력이다. 이들에게 안 후보의 사퇴는 ‘새 정치 하려는 사람이 구 정치에 무릎을 꿇은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풀이했다.

물러난 안철수가 문재인 승리 쥐락펴락
사퇴한 안 후보의 지지층을 끌어들이는 것은 기본적으로 문재인 후보와 안 후보가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에 달려있다. 안 후보가 문후보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면 지지층 이탈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그러려면 문 후보가 안 후보의 주장을 대폭 수용해야 한다. ‘백의종군’을 선언한 안 후보가 문 후보를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도록 명분을 줘야 한다는 뜻이다. 척도는 안 후보가 강조해온 ‘정치쇄신’의 수용 정도다.

안 후보는 9월 출마 선언에서 “정치가 바뀌어야 우리 삶이 바뀐다”며 정치쇄신을 앞세웠다. 이후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강조했다. 단일화 협의에 나섰던 문·안 두 후보는 지난 18일 ▶대통령의 자의적 권한 남용 근절?▶비례대표 확대 및 의원정수 조정 ▶기초의원 정당공천 폐지 등을 담은 새정치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해석을 둘러싸고 이견을 보여 안 후보가 주장한 쇄신안보다 많이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물러났지만 민주당은 실질적으로 변한 게 없다는 지적도 있다. 강원택(정치학) 서울대 교수는 “문재인 후보 쪽에서 안철수 후보가 제기한 이슈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느냐, 외형적으로 협력해서 가는 모습을 보이느냐가 중요하다. 박근혜 후보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도 변수”라고 내다봤다.

동아시아연구소(EAI) 여론분석센터 정한울 부소장은 “사퇴한 안 후보의 향후 행보는 안 후보가 아니라 문 후보에게 달려 있다. 안 후보는 사퇴 기자회견에서 ‘새 정치의 꿈은 잠시 미뤄지겠지만’이라고 쇄신이 미흡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안 후보가 후보를 사퇴하면서 공을 다시 문재인 후보에게 넘겨준 셈”이라고 말했다.

경희대 윤성이 교수는 “‘백의종군’이라는 말은 상투적인 표현 아니냐. 그보다 새 정치의 꿈은 잠시 미뤄진다는 표현에 더 의미를 둬야 할 것”이라고 해석했다.

안 후보 지지층을 흡수하는 것은 박근혜
후보에게도 마찬가지 고민이다. 가상준(정치학) 단국대 교수는 “안 후보 지지자를 끌어 들이려면 결국 무당파, 정치 실망세력을 잡아야 한다”며 “이를 위해 박 후보 측도 강력한 정치쇄신책, 젊은 층을 위한 취업·보육 정책 등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이철희 소장도 “안후보 지지층은 문 후보 지지로의 이동이 많겠지만 부동층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부동층을 잡기 위해 박 후보는 보수집결 전략 보다는 중도확장 전략을 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들 부동층과 젊은 세대를 끌기 위해 경제민주화, 복지, 취업, 보육과 같은 정책을 박 후보 쪽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펼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호남의 표심을 끌어들이는 것도 관심이다. 안 후보는 ‘호남의 사위’를 앞세우며 전남·광주에서 접전 속에서 문 후보를 앞서왔다. 친노 9인방이 사퇴했다지만 문재인 후보 측은 친노 세력이 중심이고 이들은 전통적인 호남 지지세력과 일정한 긴장관계에 있다는 평가가 높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문 후보에 대해서는 광주·호남 지역에서 일정 부분 비토하는 것이 있다. 특히 광주·전남 쪽에선 문 후보가 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후보가 안 후보 지지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은 뭘까. 본지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공동정부 구성 선언(37.2%), 민주당의 강도 높은 쇄신(25.3%), 안철수 캠프 인사 대거 기용(13.7%) 등을 꼽았다. 특히 광주·전라 지역(61%)에선 공동정부 구성 선언에 대한 필요성이 다른 지역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연령별론 20, 30대에서 ‘공동정부 구성선언’에 대한 필요성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10%포인트가량 높았다. 그러면서도 응답자들은 과반수(56%)가 공동정부의 현실화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단일화 금방 잊혀져…다시 원점 승부”
안철수 후보의 사퇴로 대선은 대결 구도가 분명해졌다. 박정희 대(對) 노무현, 보수 대(對) 진보의 맞대결이다.
본지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이번 대선을 ‘구 세력 대 신 세력의 대결’(42%), 박정희 대 노무현의 대결(13.4%)로 바라봤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맏딸인 박근혜 후보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문 후보의 이력이 불가피하게 ‘박정희 대 노무현’ 구도를 만들었다.
‘박정희 대 노무현 구도’는 두 캠프 모두에 불리하다는 지적도 있다. 과거 회귀적 대결 구도여서 두 후보 모두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박정희 대 노무현’ 대결 구도로 가도 ‘민주적 박정희’와 ‘유연한 노무현’의 구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EAI 정한울 부소장은 “안철수 후보가 기존 정치권에 반감을 가지며 들어왔는데 그가 사퇴했으니 이젠 한국 거대 정당의 대결로 되돌아갔다”며 “정권을 유지하려는 새누리당 대 정권을 잡으려는 민주당의 구도로 복귀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두 후보의 대결 구도가 본격화하면서 개별 정책과 이슈를 둘러싼 싸움도 본격화됐다. 두 후보는 경제민주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대북 문제 등에서 선명한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 본지 조사에선 ‘각 정책을 어느 후보가 잘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박 후보가 전반적으로 문 후보를 앞선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제성장 정책에선 박근혜 후보가 53%로 문재인 후보(30.6%)보다 20%포인트가량 앞섰다. 경제민주화는 박근
혜 42.7% 대 문재인 41.1%, 통일외교 분야는 박근혜 43.8% 대 문재인 41.9%, 복지 정책은 박근혜 44.3% 대 문재인 40.5%였다.

정 부소장은 “이제야말로 본격적으로 정책과 이슈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질 것”이라며 “단일화는 금방 잊혀질 테니 안 후보 사퇴는 박근혜·문재인 두 후보에게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는 출발점이 된 셈”이라고 말했다.

염태정·강나현 기자 yo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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