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처럼 순수하게, 20대처럼 프리하게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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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나 겉모습도 비슷하고, 취향도 성격도 영락없이 닮은꼴이다. 같은 일을 하다보니 표정까지 닮아간다는만화가 김동화(51세), 한승원(43세) 부부. 십수 년 전'요정 핑크’나'아카시아’를 통해 만났던 모습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아직도 소년 소녀 같은 두 부부와의 반가운 만남.

'그건 운명이었나봐요'만화 같은 만남, 그 이후

아무리 부부라지만, 어쩜 그렇게 꼭 닮은꼴일까? 그건 단순히 24년이라는 세월의 무게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전부터 닮았다는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특히 분위기가 꼭 같다나요. 24년 동안 24시간 내내 붙어 있으니까 닮을 만도 하지요. 같은 일을 하고, 같은 걸 보고, 같이 웃고…

그러다 보니 더 닮아지나봐요." 갓스물의 나이에 무작정 그림을 배우고 싶어서 찾아간 스승. 그 만남을 계기로 수십년을 같이하게
될 줄이야. 둘 다 자기 주장이 강하고 예민한 성격. 그런 둘이 만났으니, 결혼 초기에는 말싸움이 엄청 많았다.

지금? 지금은 전혀 안 싸운다. 아주 가끔 싸우게 되는 것이 오히려 재미나게 느껴질 정도다. "요즘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 우린 전생에서부터 이렇게 살았었나봐!'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만큼 너무나 편안하고 애틋해요. 아마 정이 더 쏙쏙 드는 거겠죠."

반쪽만 나이를 먹는 사람, 소년 소녀처럼 사는 부부

김동화씨는 아주 열정적인 사람이다. 그건 그와 십 분만 얘기를 해봐도 딱 알아챌 수 있다. 그냥 내버려두면 24시간 동안 줄줄줄 얘기를 쏟아낼 듯한 사람, 한마디로'에너자이저’같은 사람이다.

그에 비해 한승원씨는 천생 소녀 같은 스타일. 아, 그러고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공통점이 또 있다. 시간이 들어도 나이를 영 먹지 않는 것 같은 소년 소녀 같은 면이 있다는 점.

"내 몸 반을 뚝 잘라서 한쪽은 나이를 먹는데, 한쪽은 나이를 전혀 안 먹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요. 그건 김동화씨도 마찬가지예요. 소년 같은 마음이 아직도 있거든요. 그건 아마 만화를 그리기 때문일 거예요."

같은 일을 하다보니 상대방의 고충도 누구보다 잘 안다.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지는 못하지만, 함께 하는 취미 생활이 서로??커다란 촉진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두 사람이 함께 재미를 붙인 것이 드라이브. 드라이브라면 1시간 짜리에서부터 3시간, 5시간 코스까지 줄줄 꿰고 있을 정도로 마니아. 깜깜한 밤길을 달려가는 차 안에서는 왠지 이야기가 더 술술 잘 풀리는 것 같다.

마음 내키는 곳에 내려서 커피 한잔 마시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낭만. 비싼 카페 커피도 아닌 이,삼백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둘이서 홀짝홀짝 많이도 마셨다.

원칙을 갖고 꾸몄다! 발품 팔아서 함께 꾸민 집

원래 이 집은 30년도 더 된 낡은 집이었다. 단층의 옛날 주택이었던 집을 두 부부의 취향에 맞춰 개조한 것. 말이 리노베이션이지 벽돌 몇 장만 남기고 거의 헐다시피 한, 엄청 큰 공사였다.

부부 둘이 매달린 시간이 꼬박 석 달. 전문가의 도움은 없었다. 두 사람의 개성을 그대로 반영하자니 오히려 전문가의 손을 빌리는 것보다'아예 우리가 하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게 된 것.

다행인 것은 두 사람의 취향이 꼭 같았던 것. 대문부터 꼭대기 방까지 온통'화이트’를 기본으로, 그것도 지중해식이 아닌 유럽풍의 세미 클래식 분위기로 가자는 등 기본 컨셉트부터 척척 들어맞았다고. 그 이후론 논현동으로 을지로로 용산으로 청계천으로 엄청 발품을 팔았다.

별것 아닌 평범한 재료도 두 사람의 섬세한 취향에 딱 맞는 것으로 찾으려니 왜 그렇게 힘들던지. 정말 힘든 과정이었지만 손잡이 하나하나까지 마음을 맞춰서 구입하는 과정이 참 즐거웠다고 말한다.

생활은 엄격하게, 정신은 프리하게!

만화가란 직업으로 엄마, 아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는 건 정말 어렵다. 아이들 키우면서 아침 상도 제대로 못 챙겨주고 책가방 한번 못 싸주고… 요즘 부모의 기준에서 보면 정말 낙제점이다.

하지만 큰아들'샘’이는 컴퓨터에 재능이 많은 대학생으로 어엿하게 성장했고, 딸'그린’이는 너무나 밝고 명랑한 초등학생으로 자랐다. 시간보다 중요한 다른 투자가 있었기 때문.

첫번째 비결은 역시 대화. 워낙 부부 사이에 대화가 많다보니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부모와의 대화에 동참했다. 특히 아들은 일주일에도 두세 번씩 부모와 새벽을 지새우는 대화를 나눌 정도. 두번째는 아이들이 재능을 보이는 분야에 관해서는 호사스러울 정도로 투자를 한다는 것.

해외 여행에 자주 동참시키고 세상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키우기 위해서 카메라도 일찍 사줬다. 또 한가지는 아이를 데리고 서점에 자주 가는 것. 집 앞에 책방이 있어도 꼭 교통비를 들여가면서 큰 서점에 간다. 한두 시간씩 서점을 돌면서 책 구경을 하고 아이 스스로 책을 골라 오게 하는 과정이 꽤 의미 깊다고 믿는다.

"시간적으로 많이 투자하면서 키우진 못했지만, 평범하지 않은 부모 덕에 아이들은 정신적으로 많이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감각이 죽어 있는 사람은 살아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삶에 대해 생생한 감각이 살아 있는 아이, 그런 사람으로 키우고 싶습니다."

즉흥적인 여행, 그래서 인생은 재미있다

요즘 두 부부는 은근히 마음이 들떠 있다. 프랑스를 샅샅이 돌아볼 계획을 세우고 지금 서로의 스케줄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언제 여행을 가야지 하고 맘먹고 계획한 적은 거의 없어요. 항상 즉흥적으로 떠오르면'우리 같이 갈까?'하고 스케줄을 맞춰보죠. 그리곤 그냥 떠나요. 워낙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에 스케줄이 서로 안 맞으면 각자라도 떠나죠."

예전에 한번, 즉흥적인 계획으로 유럽 3개월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둘만의 방학이었다고나 할까. 마치 취재 여행이라도 온 듯 미친듯이 사진을 찍어대고, 다음 번 작품의 구상을 하고, 좋아하는 소품들을 고르는 과정은 행복 그 자체였다. 다시 한번 그 자유로움을 맛볼 생각을 하면 어린아이인 양 즐거워진다.

"집을 새로 꾸미고 정원을 만들고 여행을 하고… 번거롭게 살수록 인생은 재미있어요." 예술가이면서 생활에서는 철학자인 듯한 부부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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