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층 장학금 35억 챙긴 로타리클럽 간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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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빈곤층 학생들을 위해 쓸 장학금 35억원을 챙겨 달아났던 한국로타리클럽 장학재단 간부와 범행을 도운 영어학원장 등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도 부천 원미경찰서는 22일 한국로타리클럽 장학문화재단의 공금을 빼돌려 달아난 혐의(횡령)로 이 재단의 전 간부 김모(52·장학담당 부장)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김씨의 범행을 도운 뒤 공금을 나눠 가진 모 영어학원장 최모(55·여)씨와 대포통장을 이용해 자금 세탁을 도운 사채업자 3명 등 4명을 같은 혐의로 구속했다.

 김씨는 지난 1월 17~19일 한국로타리클럽 장학재단의 거래은행을 통해 장학기금 35억원을 수표로 인출한 뒤 서울 시내 22개 은행을 돌며 모두 현금으로 바꿔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16년 동안 이 장학재단에서 주로 장학금 출납 업무를 담당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김씨가 지난해 말 승진 심사에서 탈락한 데다 월급이 적게 오른 데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고 전했다.

 경찰의 조사 결과 김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최씨에게 범행 계획을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했다. 최씨는 김씨에게 사채업자를 소개해 줬으며, 김씨는 사채업자를 통해 빼돌린 돈을 세탁했다. 김씨는 최씨와 사채업자에게 각각 17억원과 10억원을 줬다. 나머지 7억여원은 김씨 자신이 챙겼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최씨 등에게 횡령한 돈 일부를 범행을 도운 대가로 주고 나머지는 투자금과 보관 용도로 돈을 준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이 돈으로 서울 서초동의 고급 아파트를 구입하는 한편 다른 사채업자 등에게 투자해 날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범행이 탄로나 공개 수배되자 머리와 콧수염을 기르고 안경을 써 변장하는 수법으로 수배망을 따돌렸다. 부산·완도·속초 등 전국 곳곳을 떠돌면서도 추적을 피하기 위해 신용카드와 휴대전화는 사용하지 않았다. 경찰은 이들이 남은 돈을 숨겨뒀을 것으로 보고 은닉처를 추적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이 빼돌린 장학금 대부분을 사용한 데다 남은 돈을 숨긴 곳에 대해 함구하고 있어 회수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로타리클럽 장학재단은 1973년 설립됐다. 40년간 3만7000여 명의 학생들에게 725억여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지난해에는 6만 명 이상의 로타리 회원이 낸 기부금으로 2700여 명의 학생들에게 72억원을 지급했다. 한국로타리는 전국에 17개 지구 1500여 개 클럽을 거느린 국내 최대 봉사단체다.

부천=유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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