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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몰염치한 ‘대성정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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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양선희
논설위원

뭉크의 ‘절규’라는 작품이 있다. 얼핏 보면 섬찟하고, 보다 보면 역겹다. 그런데 이 그림, 어떤 아름다운 꽃그림보다 더 유명하고 비싸다. 올봄 미술경매에선 1억2000만 달러(약 1300억원)에 팔렸다. 해골 그림으로 유명한 데이미언 허스트도 역겨움을 표현하는 데서는 뒤지지 않는다. 그 역시 금세기 가장 비싼 화가로 손꼽힌다. 일부러 역겨움을 표현하기 위해 사람의 배설물을 활용하는 작가들도 있다. 예술에 있어서 역겨움은 ‘장사가 되는’ 중요한 표현기법이다. 강한 인상과 충격을 남겨야 팔리는 예술 시장에서 역겨움과 같은 강렬한 감정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느닷없이 역겨운 그림 한 점이 대선 정국을 강타했다. 박정희를 낳는 박근혜를 묘사한 풍자화다. 그린 이는 홍성담씨. 아는 사람만 알았던 민중화가인 그는 이 그림 한 점으로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됐고, 온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게 됐다. 그야말로 역겨운 예술이 얼마나 절묘한 마케팅 포인트인지 온몸으로 증명한 셈이다. 이런 마당이니 ‘발상이 천박하고 표현이 저질스럽다’며 아무리 질타해봐야 하나마나 한 말이다.

 게다가 이 그림은 이번 대선판 수면 밑에서 묘한 흐름을 만들어 냈던 성(性)적 어젠다를 노골적으로 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그 선두가 ‘처녀성’에 대한 조롱이다. 미혼 여성인 박 후보를 둘러싸고 오랜 세월 ‘출산설’이 나돌았던 것은 이미 알려진 일이다. 이번 그림도 ‘출산 소문에서 영감을 얻었다’니 말이다. 그리고 그린 이가 덧붙인 말. “오입질이라도 하고 출산이라도 해서 이상스러운 신비주의 이미지를 벗어났으면 좋겠다.”

 남의 처녀성을 놓고 벌어진 작태들은 물론 예전에도 있었다. 성희롱으로 제명됐던 한 전직 국회의원은 한 기고에서 “애도 없는 처녀인 박근혜에 대해 섹시하다는 표현만큼…” 등으로 표현했다. 딴에는 예찬하는 글이다. 지난 4·11총선에선 한 미혼 여성 후보를 놓고 한 자유선진당 도의원이 “법무부 장관이 인정하는 처녀는 맞는데 보건복지부 장관은 잘 모르겠다”는 등의 발언을 해서 문제가 됐다. 처녀성은 우월하고, 처녀성을 훼손하면 인격도 훼손될 거라는 전근대적 사고는 이렇게 집요하고 치사하다.

 이뿐 아니라도 이번 대선판의 성(性)적 담론은 도를 넘었다. 때로 ‘성 탐닉증’에 걸린 대선 같다는 생각도 든다. ‘생식기만 여성’이라는 발언을 한 교수, 젊은 남성에게 ‘영계’ 발언을 해 성희롱 논란을 일으킨 여성 정당 관계자. 거기에 이번 대선을 놓고 ‘박근혜의 무미건조한 남성성과 툭하면 우는 문재인과 애매모호한 밀당 고수 안철수 두 남성 후보의 여성성 대결’이라는 담론도 나온다. 한동안 ‘대한민국 남자’라는 슬로건 아래 유도복 입고 나서다 역풍을 맞은 문재인이 ‘남자’를 내려놓자 이번엔 박근혜가 ‘준비된 여성 대통령’ 슬로건을 들고 나왔다. 그동안 지역색으로 편을 가르더니 이젠 성별로 편가르기에 나선 것인지 원….

 한데 박 후보의 등장은 차기에도 여성이 줄줄이 대선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그야말로 한국 여성의 위상이 수직상승해서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이미 필리핀·인도·태국 등에서 남성 정치인의 딸·아내·동생 등이 여성 대통령과 총리에 올랐던 것과 같은, 아시아 여성지도자의 후진성을 답습한 경우다. 그는 여성의 대표가 아니라 가족 배경을 가진 정치인일 뿐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남성 정치인의 남성성을 놓고 조롱하거나 평가하려고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정치인끼리 맞붙은 대선 판국에 웬 성적 공격이 이렇게 난무하고, 무슨 성대결이라도 벌이는 양 법석인지 모르겠다. 물론 정치판이 아니더라도 미혼 여성만 보면 ‘처녀’ 운운하며 쑥덕거리는 젊고 늙은 ‘수컷 본능’이 판을 치는 사회이다 보니 대선 판국에 처녀성 공격은 ‘팔리는 상품’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런 염치도 예의도 없는 얘기가 공공연히 돌아다니면 풍속과 심성을 해친다. 가뜩이나 성범죄가 만연한 나라에서 대선까지 ‘성적 몰염치함’이 판을 치니…, 부끄럽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