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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 세 번째 사과 … 외부 개혁 피할 명분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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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동현
사회부문 기자

검찰총장의 표정은 어두웠다. 꾹 다문 입술에선 비장감이 흘렀다. 늦은 밤. 대검찰청 청사를 나선 한상대 검찰총장은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속에 말없이 관용차에 올랐다.

 앞서 이날 오후 대검 대변인실은 이례적으로 “검찰총장의 퇴근 장면을 취재할 수 있다”고 알려 왔다. 9억원대 뇌물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김광준 서울고검 검사의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총장 명의의 ‘코멘트’가 있을 것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한 총장이 ‘퇴근 취재’에 응한 지 1시간이 되지 않아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기다렸다는 듯 한 총장이 손수 작성했다는 ‘사죄의 말씀’이 기자들의 휴대전화로 전달됐다. 한 총장은 ‘참담한 심정, 마음 깊이 사죄’ 등의 표현을 써가며 사과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환골탈태의 자세로 강력한 감찰체제를 구축하고, 뼈저린 반성을 통해 전향적인 검찰 개혁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13년 전에도 검찰총장은 비슷한 말을 했다. 한 총장의 ‘퇴근 성명’이 비장미의 연출이었다면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은 ‘눈물의 사죄’ 전략을 썼다. 대전 법조비리 사건으로 검찰이 국민적 비난을 받을 때다.

 그는 “오늘을 기해 검찰은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뿌리뽑고 국민이 기대하는 수준의 윤리관과 직업의식을 확립하겠다”고 했다. TV로 생중계된 사과성명에서 김 총장은 흰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13년이 흘렀지만 두 검찰총장의 사과문은 바꿔 읽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흡사하다. 그러나 김 전 총장 이후 검사 비리와 관련한 검찰총장 사과만 세 번째다. 2006년 법조 브로커 김홍수 사건 당시 정상명 검찰총장이 사과했고, 김준규 전 검찰총장도 2010년 ‘스폰서 검사’ 사건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검찰은 그때마다 감찰 강화 방안을 내놨다. 2006년 법조 브로커 비리 사건 이후 대검 감찰부장을 외부 공모할 수 있게 법을 바꿨다. 2010년 스폰서 검사 사건 후에는 대검 감찰부를 감찰본부로 승격하고 대검 감찰본부장과 법무부 감찰관에 외부 인사를 앉혔다.

 하지만 이런 대책이 무색하게도 특임검사제도가 도입된 2010년 이후 3년째 매년 11월이면 검사 비리 사건이 터졌다. 그때마다 특임검사가 수사에 나섰다. 검찰 내부에서 ‘11월의 저주’란 말이 나올 정도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한 총장의 감찰제도 개선 약속에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제도를 바꾸면 뭐하나. 대형 검사 비리가 감찰에서 적발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외부 출신 감찰본부장이 검사들에게 둘러싸여 고립돼 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고 꼬집었다. 13년은 검찰 스스로 개혁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검찰이 자신들의 부정부패조차 뿌리뽑지 못한다면 이제 외부로부터의 개혁을 거부할 명분은 없다.

이동현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