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해외칼럼

재선된 미국 대통령은 과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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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크리스토퍼 힐
미국 덴버대 교수
전 주한 미국대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다.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미 대통령은 통상 실용주의에 입각해 어려운 과제를 과감하게 처리해 왔다. 이는 재선이 최상위 목표였던 첫 임기 때는 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이 때문에 재선된 미 대통령은 새 임기 동안 대외정책에서 높은 성과를 거둬 왔다. 예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자신의 둘째 임기를 첫 임기 동안 벌인 실수를 만회하는 데 사용했다. 이 덕분에 둘째 임기 외교팀은 상당히 바빴다. 이제 오바마는 레임덕이 오기 전까지 재선이 가져다 준 행동의 자유를 맘껏 활용해야 한다.

 이번 대선 뒤 오바마의 첫 해외 나들이는 캄보디아에서 열리는 동아시아 정상회의 참석이다. 민주화와 개방을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하고 있는 미얀마도 방문해 격려하고 도움을 줄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추구해 온 아시아 우선 정책의 일환이다.

 하지만 오바마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아시아 우선 정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국내외에 설명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의 미얀마 방문은 벌써 중국을 압박하거나 포위하려는 시도의 일환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오랫동안 개입해 온 아시아 지역에서 전략적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인구 13억 명의 나라와 새로운 싸움을 시작하겠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에 따른 갈등을 줄이고 미국의 정책을 펼치기 위해선 효과적인 소통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중국은 포기하기엔 너무 큰 나라며 따라서 장기간에 걸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미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이런 메시지를 실무자 선에서는 물론 대통령 자신도 수시로 전달해야 한다. 미국의 아시아 정책은 통상 중국에 초점을 맞춰왔으며 이는 초당적인 지지를 받아왔다.

 중국과의 협상은 원래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최근엔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중국의 내부 긴장과 커지는 민족주의, 그리고 이웃국가와의 갈등 때문이다. 중국은 꾸준하게 약속을 중시하면서 조용하고 사려 깊게 접근해야 할 나라다. 중국 정책의 목표는 좋은 관계이지 대치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오바마는 이런 일에 적임자다.

 아시아 우선 정책을 추구한다고 중동 지역의 중요성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중동은 앞으로 수십 년간 지구촌의 핵심 에너지 공급처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동아시아와 달리 복잡한 혼란 지역으로 계속 남을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 행정부는 둘째 임기를 맞아 이 지역에 대한 외교적 활력을 복원하는 노력을 하면서 중동의 여러 나라와 이스라엘 간의 관계, 지역 경제 복구, 이라크 사태 등 다양한 현장 이슈를 재점검해야 한다.

 오바마는 첫 임기 때 취임한 지 불과 며칠 뒤 중동에 중재팀을 파견했다. 이번에는 중동 관련 외교노력을 시리아에서 시작해야 한다. 국제적인 리더십이 공백을 보이는 사이 시리아 사태는 종파 간 내전으로 확대됐다. 사태 해결을 지원하는 것은 미국의 국익에 중요하다. 시리아 국민의 상당수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제거를 원하고 있고, 그는 마땅히 물러나야 한다. 하지만 미국은 이러한 정치적 구호와는 별도로 러시아와 중국 같은 국제사회 파트너들과의 협력도 생각해야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두 나라는 미국의 외교정책에서 시리아보다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신뢰할 만한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 가장 믿을 만한 상대는 유럽이다. 유럽은 현재 자체 경제위기에 발목이 잡혀 있다. 하지만 유럽은 조만간 다시 일어설 것이며, 미국은 그동안 회복을 도울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국제 안보에서 지극히 중요한 이란 핵 프로그램을 비롯한 여러 사안에서 유럽과 지속적으로 손잡고 일하기 위해서도 이는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어떤 미 대통령도 국제문제에서 오바마만큼 분명한 식견과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의 둘째 임기는 첫 임기 때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던 외교 분야에서 맘껏 포부를 펼칠 기회다.

ⓒProject Syndicate

크리스토퍼 힐 미국 덴버대 교수 전 주한 미국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