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 통설에 대한 문제 제기] '백제금동대향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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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판계는 대학 강단에 서지 않는 '독립 학자군(群) ' 의 활약이 돋보인다. 주목되는 것은 주로 젊은층으로 이뤄진 이들은 황당무계한 소리의 동어반복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문의 코스워크를 밟아 방법론을 갖춘 점도 새로운 변화다. 사학계의 경우 중국 중심의 중화주의 사관을 벗어나 다원주의적 사관을 견지한다는 공통점도 갖는다.

여기 신간 두 종이 그걸 생생하게 보여준다. 철학도 서정록씨는 『백제금동대향로』에서 초특급 국보로 꼽히는 이 향로(香爐) 에 대한 기존의 불교 관련설을 뒤집으며, 향로 연구의 새 지평으로 중앙아사이아.북방 시베리아 문화를 제시하고 있다.

사학도 이희근씨의 『한국사는 없다』는 저자가 몇년간 잇따라 펴낸 대중적 역사물의 중간 결산이라 할 만하다. 이씨는 한국 고대사에서 조선 후기 실학에 이르기까지 '한국사 연구의 구멍' 을 새롭게 보여주고 있다. 도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두 저작을 들여다 보자.

1천5백년간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국보 287호) 에 다시 향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그 향내가 독특하다. 지금껏 우리 후각에 익숙한 불교 연화(蓮花) 나 도교 신선사상의 향기가 아니다. 저 멀리 만주 벌판과 고구려, 그리고 실크로드를 넘어 서역의 향내가 짙다. "당시 백제인들은 코스모폴리턴이었다. "

저자 서정록(47) 씨는 "높이 62.5㎝의 이 향로엔 고대 동북아시아 지역의 이상적 세계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 말한다. 저자는 1993년 발굴된 이 향로에서 고대 문화의 다양한 징표를 읽어낸다. 예컨대 향로에 장식된 연꽃만 보고 불교 의식에 쓰인 유물이라고 예단하는 것을 공박한다. "연꽃은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고대 동북아에서 태양을 상징하는 태양꽃으로 여겨졌다. "

아울러 동북아 샤머니즘과의 관련에 주목한 저자는 부여 능산리 유적지의 '절터' 로 알려졌던 건물터를 백제 왕실의 조상신과 각종 신령을 모신 '신궁(神宮) ' 이라고 주장한다.

기실 연꽃 이외엔 이 향로에 불교와 연관지을 만한 것이 없다. 향로의 윗부분에 장식된 봉황과 기러기, 그리고 다섯 명의 악사 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향로가 고대사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초특급 국보라고 말해 왔으면서도 향로의 장식물이 함장한 풍부한 상징성을 연꽃 하나에 의지해 불교와 연관해 풀어 온 것이 기존의 학설이다.

저자의 결론부터 말하면 "부여와 고구려에서 남하한 사람들이 지배층을 형성한 백제의 이 향로는 고구려 고분벽화, 북방과 서역의 유목문화 등과 복합적으로 연결된 백제 왕실의 제기(祭器) 다. " 왕을 상징하는 봉황과 백성을 상징하는 기러기, 그리고 이 둘 사이를 이어주는 다섯명 악사의 의미를 알아내는 것이 핵심인데, 그것은 바로 "음악의 조화를 통해 정치적 화합의 음률을 조정하려 했던 고대인의 정신세계를 구현한 것" 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눈 밝은 사람은 이 대목에서 시인 김지하가 몇 해 전부터 말해 온 '율려(律呂) ' 사상을 연상할 것이다.

신간 『백제금동대향로』의 저자는 이 향로를 통해 중국 중심의 '중화(中華) 적 세계관' 이 곧 동양적인 것으로 간주해 온 시각을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백제의 향로를 중국 한나라의 향로와 같은 계열로 보는 기존의 통설을 배격하는 것이다. 한나라 멸망 후 수백년이 지나 백제가 한나라의 양식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연꽃장식 등을 매개로 고구려 고분벽화와 북방 유목민족의 문화와 연결시킨다.

더욱이 향로 자체도 중국 고유의 것이 아니다. "중국 고대 향로의 출현은 전국시대 말기에 서역에서 전래되기 시작한 향료(香料) 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

향을 피우는 문화는 중동지방에서 기원전 수천 년 전부터 시작된 반면, 고대 중국에는 그러한 향료문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중국 중심의 실크로드 이외의 수많은 동서 교역로를 통해 서역의 향료가 중국에 전해졌다는 주장은 도교의 신선사상과의 관련설도 부정하는 주장이다.

서울대 철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우리 전통사상에 심취해 온 저자는 지난 7년간 백제의 이 향로를 연구하며 우리 고대사의 비밀을 푸는 열쇠를 발견했다고 고백한다.

시인 김지하와 고(故) 장일순 선생과 함께 '한살림운동' 을 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강단 사학자들의 연구와 구분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저자가 민족주의적 느낌의 개연성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다.

기실 연꽃의 유래라든가 향로의 발달사, 그리고 고대 중앙아시아 지역의 동향에 대한 저자의 말들은 동서양의 최근 연구흐름인 다원주의적 역사관을 반영한 것이다.

고대 동북아의 연꽃문화에 대해선 일본의 하야시 미나오(林巳奈夫) 의 영향이 크다. 고대인들은 "하늘에는 지상의 연못에 대응하는 하늘연못이 있으며, 지상의 연꽃은 이 하늘연못에 거꾸로 심어진 연꽃(또는 태양) 의 광휘를 받아 이 세상을 환히 밝힌다고 여겼다. "

그래서 "왕궁이나 고분 천정에 하늘연못, 즉 천정(天井) 을 만들고 거기에 연꽂을 거꾸로 심었던 것이다. 중국 한나라의 기남화상석묘(沂南畵像石墓) 나 고구려고분의 천장에 장식된 연꽃이 그러한 예" 라고 저자는 밝힌다. 불교 관련설을 부정하는 대목이다.

방대한 자료의 뒷받침을 받고 있는 저자의 자유로운 상상력은 고대사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한 재야학자의 등장을 알린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 책은 고대 '율려' 사상에 대한 사료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으도 볼 수 있기에 더욱 주목된다. 그러나 율려사상 그 자체가 아직 논의가 분분한 분야다. 관련 학계의 심도있는 논의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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